渦中日記 2017/10/11

저의 “멘탈”이 궁금하거나 “본질”을 알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굳이 설명할 의무는 없지만 신경쓰이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덧붙입니다. 즉 이 글은 호사카교수나 그분의 선동에 동조하는 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사카사태”를 걱정해 주고 계신 저의 페친과 학교동료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학술모임 자금에 대해>
1. 호사카 교수가 의심하는 13년전,2004년 한일심포지엄은 대한민국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 실시했습니다. 주제는 교과서문제였습니다.
2. 호사카 교수에게 “합숙세미나”라면서 이 역시 자금을 추궁당한 또하나의 모임은 2001년에 실시된 것이고 제가 아니라 당시 한양대에 있던 임지현교수가 주최한 겁니다. 엉뚱한 화살을 저에게 돌린 셈입니다.
3. 호사카 교수는 제가 주최한 2004년 모임에 이영훈교수가 참석했다는 이유로 뉴라이트 운운하며 일본의 검은돈 지원을 받았을 의혹을 강화시키려 하지만, 당시는 아직 뉴라이트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검색해 보니 이해 말에 결성되었군요.) 당시 함께 했던 한국멤버들은 이후, 사상적/정치적 입장에서 대충 세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영훈교수를 학자로서 존경하지만, 2004년 모임 이후로는정치/학술모임을 함께 한적이 없습니다.
4. 호사카 교수는, 이 모임의 두번째 모임에 위안부할머니가 참석해 고함을 쳤다면서 할머니한테 ” 치욕적인”모임이었다고 했지만, 할머니의 고함은 일본, 구체적으로는 와다하루키교수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저의 재판에도 출석하셔서 저에게 욕을 하신 분인데, “치욕적인” 느낌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 분이 아니라 저나 와다하루키교수일 겁니다.
5. 이 모임은 일본 도쿄대 교수이자 우익교과서를 반대하는 모임에 앞장섰고 “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사무국장인 고모리요이치교수와 제가 같이 만든 한일지식인 모임이었습니다. 따라서 학회도 아니고 제가 회장인 모임도 아닙니다. 어떤 모임인지, <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라는 책에 정리되어 있으니 보실 수 있습니다.
<"협박"메일에 대해>
1. 호사카교수는 저에게 문자를 보내 추궁한 이후로도 또다시 연속 다섯번이나 메일을 보낸 끝에 “저를 협박했다는 내용을 정식으로 검찰(지금 교수님의 재판을 담당하는 검찰팀)에게공식문서로 제출하겠습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물론 이미 밝혀진 것처럼 그 메일은 제가 보낸 것도 아니고 사주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곳도 아니고 “재판을 담당하는 검찰”에게 제출하겠다는 말이야말로, 천박한 위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밤중 12시 넘은 시각까지 문자를 보내고, 다시 메일로 엉뚱한 의혹과 추측, 그리고 위협을 이어간 행위, 그리고 여기에 차마 쓰지 못하는 또다른 언사는 법적대응이 필요한 정도로 보이지만 에너지절약을 위해 하지 않기로 합니다.
다만 이번 일로 호사카교수의 인격을 근본부터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대한민국국민들께서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2. 호사카교수에게 선동당한 모르는 이들의 언사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 이나영/강성현교수가 나서서 거든 일에 다시한번 실망했습니다. 제가 “열성 지지자들을 활용해 싸우게 만들었다””아주 나쁜 선동과 대화 방법을 능수능란하게”사용한다고 말한 강성현씨는, 얼마전에 제가 “틀린 소리”를 했다고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기에, 어디가 틀렸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응답이 없었지요.
호사카교수및 그의 어처구니 없는 선동에 동조한 이들과는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으니, 해명도 사과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학계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만 것 같아 자괴감이 드는군요. 이 좋은 가을에.

渦中日記 2017/10/5

渦中日記 20171005
“박유하교수님이 그동안 운영하셨던 학회의 운영자금은 어디에서 지원받으셨나요?
이것은 공개대상 질문입니다.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사카드림”
(10/5 pm 2:25)
더이상 소모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오늘 다시 이런 메일까지 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쓴다. 2017년 가을 한국 사회의, 너무나도 얄팍하고 천박한 풍경.
다른 날도 아닌 어제–추석날에 페북에서 호사카유지 교수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내가 답했던 댓글들이 삭제되었기에, 그것도 여기에 올려둔다.
심지어 밤 10시 반 넘은 시각에 다시 문자. 그때부터 나눈 대화는 차마 여기에 적지 않겠다. 오랜만에 순수한 분노가 치미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문자 차단. 
이후 호사카 교수는 내가 재판 때문에 토론에 응하지 못한다고 했다면서(물론 이것도 왜곡이다) 미루기로 했다고 포스팅에서 썼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다시 메일이 온 것.
이메일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얼마전부터 호사카교수가 “한국내에 일본 돈 받아 연구하는 신친일파가 있다, 조만간 명단도 밝히겠다”는 글을 뿌리기 시작했었는데 그가 사냥하려는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그는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하는 P교수”라는 식의 얘기도 해 왔었고, 내가 그를 페친으로 받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쪽에 있었는데.
물론 나는 당장이라도 답할 수 있다. 그가 말한 “학회”란 아마도 여기서도 가끔 모임을 공지했던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얘기인 듯 하고, 그가 의심하는 일본돈 따위는 한푼도 들어있지 않으니까. 더구나 투명하게 운영했기 때문에 모임 멤버들이 내용을 다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거부한다. 알고 싶으면 직접 조사하시기 바란다. 의심할만한 중요 기밀이라면 호사카교수께서 직접 발품을 팔아도 판 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오만하고 해괴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국가화하고 있다. 최근에도 이상호사태가(김광석이나 서해순이 아니라 이상호 사태로 불러야 맞다) 보여준 것처럼, 이른바 “민주화”된 우리사회는, 이제 모두가 스스로 국가의 얼굴을 하고, 누군가를 기소하고 처단하고 싶어한다. 연휴든 뭐든、누군가의 평온한 일상이 깨지든 말든, 그들은 자신이 만든 “신념”을 완수하려 한다. 아주 부드러운 얼굴로.
사실 나는 이런 “말”들이 슬프다. 물론 나의 말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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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교수가 지운 나의 댓글과 문자내용 일부 올려 둔다 . 그리고 호사카 교수의 글에 대한 그의 페친과 정대협 이나영 교수의 반응캡처.
“차단이 아니라 페삭했습니다. 저를 직간접으로 많이 비난하시면서 페친이 되자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제가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말했다는 왜곡주장에 깊이 실망했습니다. 이어지고 싶지 않습니다.”(7:05 pm 10/4)
“그런 말을 한 기억도 없지만 했다 해도 ‘설사 위안부가 매춘부 였다고 해도’ 겠지요. 한국어 잘 아시니 그 차이는 아실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저의 책도 아직 안 읽고 발언만 가지고 비난하셨다는 건가요. 제 책을 이제부터라도 읽어 주신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비판을 위해서 읽겠다는 거네요.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보면, 그런 책 중에 귀기울일 만한 지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비판 할 수밖에 없는 얘기를 하셔서 비판했지만 저는 선생님하고까지 논의할 시간이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를 공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선순위를 둔다면 위안부 문제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제가 재판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북이 아니라 공식적인 장이 있다면 생각해 보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저를 비판한 사람들의 비열함이 실망스러워서 얼굴 맞대고 싶지 않은 감정도 강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왜 연구하기 시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이 앞서는 연구중에 훌륭한 연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우연선생과 저는 같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 페북 봤는데 ‘대학에서 쉽게 그만두거나 하게 할 수가 없었다’라니, 상상도 못했던, 오만하고 난폭한 말이네요.
선생님이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아무튼 이만 하겠습니다.
나의 책을 정확하게 읽고 사과하실게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9:32 pm 10/4)
“선생님이 왜 이렇게 되셨는지 슬프군요. 비판은 자유지만 다들 비난하니 나도 비난해야겠다는 건가요. 일본사람들은 그런 거 몰라서 제 책을 높이 평가 했다는 건가요.
유학시절에 돈 아껴서 샀던 우리 아이 그림 책들, 그많은 그림책들을 선생님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도 부끄러워지네요. 일본인 선생님들을 학교에서 자르려고 할 때 제가 선생님을 위해 뛰어다녔던 일을 기억하신다면, 제가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재판중일 때 이러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10:34 pm 10/4)
“다시 한번 깊이 실망합니다. 두번 다시 연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에서 그만두게 하지 못한다는 발언만으로 얼굴 마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