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16 – 민사재판 1심 변론

민사재판 1심이 오늘로 끝났다. 처음으로 재판장 앞에서 변론을 했다. 시간이 없다며 재촉해서 준비했던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 오늘은 이 원고에서 언급한 할머니의 음성파일과 영상 파일도 제출했다. 조심스러워 이제까지 제출하지 않았던 자료다.
그 자리에서 판사가 음성 파일을 재생시켰다. 참석했던 할머니나 나눔의 집 관계자들도 놀란 듯 했지만 나도 놀랐다. 그 자리에서 공개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이 시작되면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자료들을 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건 내가 원했던 국면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이 재판이 취하되거나 기각 되기를 바란다.
재판이 끝나고 참석하신 위안부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 오해를 푸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이하는 준비했던 변론. 이로써 민사재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나머지 2주일은 심신을 이완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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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님.

<제국의 위안부>내용중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판결이 끝나고 민사재판이 시작된 지 벌써 반년 이상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판결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음을 말씀드려 왔습니다. 가처분 판결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신청해 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18일에는 그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저를 기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월에 첫 공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민사재판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판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측은, 2014년6월에 저의 책 내용이 ‘허위’이자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책이라면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매춘’‘동지적관계’라는 두 단어를 강조하였고 제가 위안부할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는 저의 책이 그저 ‘한일간 화해’를 위한 책이며, ‘일본극우의 주장과 다르지 않’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오독 혹은 곡해에 근거한 허위입니다. 그 사실을 저는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반론을 통해 항변해 왔습니다.

1.
저의 책은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책이긴 커녕 한국과 일본의 식자들이 “오히려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해 준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책을 낸 목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제까지 이른바 양심적 일본인은 물론,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환기시키고 일본정부관계자들에게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입니다.

대립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편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여년동안 지원단체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이 지원단체의 주장과 다른 점은 부정론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는 점, 그리고 그에 입각해 그들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하려 한 점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를 비롯, 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부분을 묵살하고 조선인위안부에 관한 서술과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와 검찰 역시 그들의 이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책이 정말로 그런 책이라면 한국에서 처음 발간했을 때 이미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발간 이후 10개월동안 그런 식의 비난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호의적인 서평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한국의 지식인들마저 목소리를 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측 항의 성명에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고노전관방장관, 무라야먀 전 수상,그리고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동참한 것은, 저의 책이 원고측이 생각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또, 성명에 참여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의 지인이기도 합니다. 저의 인식이 위안부할머니들을 폄훼하는 것이었다면 이들과 지인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을 내는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2.
고발은, 아직 학생신분인 젊은이들의 거칠고 조악한 독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후 70년되는 한국의 문제를 말한 부분을 할머니를 비난한 것으로 읽고, 제가 할머니를 비난했다고 말했습니다. 원고측의 그런 비난이 확산되면서 저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책을 올바르게 이해받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지난 1년 반동안 오로지, 법원과 여론을 향해,고발에 이르게 한 것은 “오독”이라고만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원고측은 처음에는 “허위”에 중점을 두었던 고발취지를 중간에 바꾸어, 저의 책이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면서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오독이든 곡해이든, 거짓을 말한 것은 원고측 대변인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동안 고발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일은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가처분판결과 형사기소는, 저의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일부 하려 합니다. 물론 증빙자료도 제출하겠습니다.

원고측이 문제시했던 저의 인식은,실은 생존 위안부할머니의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위안부문제 발생 직후의 한국정부의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저의 책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 중에도 저와 같은 인식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사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런 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 말만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계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사회는 위안부할머니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했었고 이제 할머님들은 당당하게 생각을 말씀하십니다.그러나 어떤 이야기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4.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위안부란, 제국이 세력확장을 위해 식민지치하의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군인과 달리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제로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
저는 강제동원인지 아닌지, 소녀인지 아닌지 여부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그 점에만 주목해 20년 이상 대립해 왔고 이제 차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부문제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시한 개념을 위안부할머니들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들 안에 자리한 차별의식과 그 밖의 요소들입니다.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조차, 위안부에 관한 인식은 저와 비슷합니다.

5.
재판장님, 그래서 이제 저는 그동안 제출했던 죽은 자료들 대신,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이 사회에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저는 죽은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나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죽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향해 말해진 그 목소리를, 세상이 들을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와 마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 해결방식을 둘러싼, 기존의 관계자들과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조선인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생각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 소송을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의감에 입각해 저를 비난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를 고발한 이들을, 세상이, 혹은 그들 자신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정의로운 이들과,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불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로써 위안부문제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2015년12월16일
박유하 드림

작성일: 2015.12.16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7615505265361

渦中日記 2015/12/15-2

내일 오전 10시에 민사재판 결심이 있다. 연기된 형사재판은 1월20일로 정해졌다.

며칠 전엔 일본 아사히 신문 전주필이 나의 책을 위안부할머니를 명예훼손하는 책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칼럼을 써 주었었다.
오늘 읽게 된 SBS기자의 글은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함에 호감이 갔다. 정리에 일부 오류는 있지만, 시간을 두고 마주해 준 마음이 고맙다.

고발된 건 2014년 6월 16일이었다. 그동안 고발자체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는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원래 나의 책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던 이들이었다.
이제, 그렇지 않았던 이들이 새롭게, 나의 책을 진지하게 읽어주기 시작한 것 같다. 꼭 1년 반만의 일이다.

최종심의 판결은 1월에 내려지게 된다. 어떤 새해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내일은 고요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http://news.donga.com/…/3/70040100000103/20151210/75282476/1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35862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7149198645325

渦中日記 2015/12/13

내일이라는 통지를 받았던 형사재판이 연기되었다. 날짜는 모르지만 판사가 하나인 단독재판이었던 것이 복수가 심의하는 합의부재판으로 옮겨진 것이 이유라고 들었다. 따라서 이번주엔 16일 민사재판만 있게 되었다. 1심 마지막 재판이라 출석해서, 의견을 말할 예정이다.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여러가지가 보인다.
꼭 해야 했던 몇가지 일들을 온힘을 다 해 하고 나니, 약간의 무기력증이 왔다.

나눔의집 소장이 음해메일을 퍼뜨리는 일에 나서기까지 했다는 걸 알았다. 고발 직후부터 해 왔던 얘기라 놀라울 건 없지만 그가 안쓰럽다. 그는 불교도라고 들었는데, 무엇을 지키려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요약해 페북에서 공개질문장을 쓴 이도 있다고 들었다. 거짓과 비방을 퍼뜨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누군가가 얼마전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를 번역해 주었다. 번역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올려 둔다.
이 안에는, 대중들에게 읽히기 전에 “논문으로 써야 했다”고 비난했던 이에 대한 대답부분이 있는데 “나는 내 분야에서 충분히 학자로 인정 받고 있으므로 굳이 ‘학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학술서형식으로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는 의미였다.

http://dbzlanfk.blogspot.kr/2015/12/blog-post_13.html?spref=tw&m=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5723022121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