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7 – 반론, 나눔의 집 입장에 대하여

고발직후, 나눔의 집과 여러 응수를 했다. 나를 “일제의 창녀”라고 쓴 트윗을 소장이 리트윗했기에 이후 차단까지 했다.

그들과 진실공방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하면 우리는 그에 대해 반론을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일인지, 누구를 위한 일인지 잘 모르는 채로. 소송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허무하다.
(아까 이 글을 공유한다는 게 잘못 올렸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엊그제, ‘나눔의집’ 쪽에서 최근 한국-일본에서 나온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성명과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따로 얘기를 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제 짧은 소견으로나마 사실관계를 포함한 몇 가지 점만 말씀드려두겠습니다.

1.
벌써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줄곧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의견, 주장’ 모두 법정에서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려왔습니다. ‘사실’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
나눔의집 쪽은 입장 표명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작년 6월의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민.형사 고소 시점부터 이 책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오셨습니다.(가처분신청 심리 중간쯤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 답변서 제출 이후 ‘신청 취지’를 ‘변경’하실 때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는 식으로 바뀌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박유하 교수가 여러 차례 밝혔고 법원 및 검찰 답변서에서도 상세히 기술했듯이, 이 책에 언급된 어떤 내용도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어느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결국 이 기사는 실리지 못한/않은 것으로 압니다).

-문:위안부 강제연행은 포주나 업자들의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가 더 많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답: 제가 책에 인용한 증언집은 기존 위안부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걸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은 모두 허위를 바탕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라고 썼다는 ‘거짓말’을 비롯한 ‘허위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서는, 원고 측과 검찰이 들고 있는 이른바 ‘범죄일람표’와 거기에 대한 반박을 곧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3.
2015년 봄부터 몇 달 동안 진행된 검찰의 형사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나눔의집 쪽에서 내놓은 입장은 저희가 아는 바와 다릅니다.

나눔의집 쪽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형사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들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문구는 “가처분사건의 결정주문 제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내외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지 아니한다”였습니다. ‘한국 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서 ‘삭제판’도 출판하지 말고, 비슷한 표현을 앞으로 나라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말 것이며, 결정적으로 한국어판과는 구성도 문장도 다른 ‘일본어판’마저 절판시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예 입을 다물라는 요구였지만, 박유하 교수는 ‘일본어판’과 관련된 요구 말고는 모두 수용하려고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정안의 전문과 1항, 2항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사건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20년이 넘도록 갈등을 거듭해온 위안부 문제가 고령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고 이를 위해 일본정부의 명백한 사죄와 보상의 행동을 촉구한다.

한편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한일양국간의 위안부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동시에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호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이에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다.

1)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 박유하가 저작하고 피고소인 정종주가 출판ㆍ배포한 책인 ‘제국의 위안부’(이하 ‘이 책’ 이라 한다.)로 인하여 고소인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하여 고소인 및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울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 고소인들은 피고소인들이 이 책을 저작ㆍ출판ㆍ배포한 목적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내놓는데 있었고,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할 적극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4.
박유하 교수도 저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모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눈 감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한시라도 일찍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돌아가신 최갑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에서 단죄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토론되고 비판받고 논박하는 ‘공개토론’을 통해서 진정한 해결책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의 여러 선생님들도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공개토론을 제안하셨으니, 모쪼록 이 사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래는, 나눔의집 쪽에서 낸 ‘입장’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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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항의 성명서(2015년11월26일)와 국내학자들의 기자회견(2015년12월2일)에 대한 <나눔의 집> 입장

금번 박유하에 대한 기소에 대하여 학문적 잣대로 기소를 반대 하는 것은, 한국의 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과연 그 동안 성명인들이 성의를 보여왔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 해결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합니다.

소위 연구서라는 것은 사실 묘사와 의견으로 구성되어 있고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 역시 그러합니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서문에서 그럴듯한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지만 박유하의 책 역시 다른 책들이 갖는 한계처럼 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 외에 부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가 존재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두어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타인의 기본권까지 무제한으로 침해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금번 성명서가 우려하고 있듯이 대한민국 검찰의 박유하에 대한 기소는 학문과 언론의 활발한 장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표현되고 있는 부정확한 의견에 대하여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 역시 박유하의 틀린 의견을 문제 삼아 형사 고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성명서에 밝힌 것처럼 박유하의 책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를 심도 깊게 연구한 대한민국의 학자들이나 직접적인 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가 자신의 책에서 피력하는 의견이나 역사관 등에 대하여 비록 동의를 하지는 않을 지라도 이를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니까요

2013년 8월에 박유하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출간의도를 밝히며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자 박유하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에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었던 ‘위안부’ 삶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거나 심하게 왜곡한 부분이 존재하였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의 책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이 잘못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였고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명예가 심하게 훼손되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금번 성명서에서 한국 검찰과 박유하라는 두 주체를 중심으로 이분법적 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완전히 간과한 것입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은 사람을 도둑이라고 규정짓는 책이 발간된 경우 피해자가 이를 참아야만하고 이는 학문의 자유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는 더 이상 학문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표현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 사실이 아니고 자신들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하였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2014년 6월 17일 박유하를 상대로 출판금지가처분, 민사소송, 형사고소를 하였습니다.

2015. 2. 17. 가처분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하거나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등의 몇몇 표현이 객관적인 연구 결과나 사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표현으로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제되는 표현을 삭제하라고 하였습니다.

한국검찰은 2014. 10.월 이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조사하고 박유하도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형사조정 절차를 거쳤습니다. 일본에는 생소하겠지만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는 제도입니다.

위 조정절차에서 피해자 할머니 측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유하는 형사조정절차에서 여러 이유를 대며 법원이 삭제를 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용한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검찰은 수차례 더 조정을 주선하였지만 결국 조정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검찰은 박유하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국 형법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일반 명예훼손죄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금번 한국 검찰은 박유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반 명예훼손죄 중 허위사실 공표로 기소를 한 것입니다. 즉 박유하의 연구 결과에 대하여 공소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박유하의 책 중에서 일부 표현이 할머니들이 겪은 경험을 왜곡하였고 이러한 행위가 할머니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금번 학자들이 발표한 성명은 한국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검찰이 어떤 것을 기소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분노하고 고통 받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유하를 고소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발적 매춘’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부’ 생활을 견딘 것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견뎠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형사조정절차에서 위와 같은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지만 박유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이후 프랑스나 독일 등 몇몇 국가는 법제정을 통해 반유대주의를 표명하거나 나치의 대량 학살 등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였습니다. 의견표명에 대한 처벌이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법까지 제정하여 처벌을 하는 것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금번 기소는 박유하의 책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여러 의견을 대상으로 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국의 위안부> 책에서 표현되고 있는 여러 견해의 부적절함에 대한 논의는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만 사실이 아님에도 사실인 것처럼 표현을 하여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준 부분은 시정되어야하고 그러한 사실과 다른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발표된 성명서는 금번 형사처분이 왜 이루어졌고 어떤 죄명으로 기소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표현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금번 성명이 단순히 한국 검찰이 기소를 한 것이 박유하의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비난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피상적인 비난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닙니다. 반복하지만 성명서 어디에도 고소를 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박유하의 표현으로 인한 고통을 보듬는 내용이 없습니다.

향후에도 위안부 해결을 위한 건강한 토론의 장은 늘 열려 있어야하고 학문의 자유 역시 완벽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사실과 다른 표현으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계속 고통을 주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형사사건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691312524447

渦中日記 2014/10/24

어제는 성균관대학에서 작은 세미나를 하고 왔다. <제국의 위안부>를 테마로 한 모임으로는, 출간 이후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한번 서평회를 열어준 것에 이어 두번째, 고발사태 이후로는 첫번째인, 내게는 역사적(!)인 초청이었다. 같은 성균관대에서 열린 다른 연구회에서는 작년에 내 책을 대상으로 논의했다는데 나를 부르진 않았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내겐 아주 중요해 보인다.

그저께, 두번째 재판이 있었다. 출석을 심각하게 고려했는데 변호사님을 비롯한 주변친지들의 만류도 있어 결국 나가지 않았다.
꼭 할머니들의 고성을 듣고 멱살을 잡히는 장면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었다(원고측은 그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가능한 한 보지 않은 채로 있고 싶은 심경. 그게 강했다. 그리고 참석한 이들의 참관기를 들어보니, 그날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책을 출판한 탓에 졸지에 “피고”이자 “채무자”라는 호칭을 얻게 된 정종주대표가 이번심리에 맞춰 멋진 답변서를 제출해 주었다.
몇년전 어느날, 나는 그가 내 친구와 논전을 펴는 장면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과연 굴지의 법대출신답게 치밀한 논리력의 소유자라는 걸 알았다. (그 때 그와 논전을 펼쳤던 초등학교 동창과, 고발사태이후 페이스북에서 만났다는 아이러니.)

그의 글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때의 논전이 다시 생각나는, 섹시한 글. 태그되었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해서 다시 올린다.
정대표와 만난지 어느새 14년. 그리고 그와 나는 지금 함께 “피고”의 신분이 되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 때문에 그동안 알맹이 없음을 핑계로 안 하던 페이스북에 가입했으나 여전히 알맹이 없어 아무것도 없는 맹탕이었던 이곳에, 오늘 열린 ‘도서출판등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신청’ 2차 심리를 앞두고 재판부에 냈던 ‘채무자 정종주’의 진술서를 올린다. 원래는 초안이었으나, 제대로 채울 틈이 없었던.
어쨌든, 소박하나마, (‘단순가담자’^^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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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비 서 면

사 건 2014카합10095 도서출판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채권자 이옥선 외 8

채무자 박유하 외 1

위 사건에 관하여 채무자 정종주는 다음과 같이 심문을 준비합니다.

다 음

1. 채권자 측의 ‘신청 취지’ 및 ‘신청 이유’에 대하여

(1) 채무자들의 대리인이 2014년 7월 8일자로 제출한 「답변서」 및 답변서와 함께 채무자 박유하가 제출한 참고자료 「도서출판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서」, 그리고 2014년 9월 3일자로 대리인이 제출한 「준비서면」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답변을 원용합니다.

(2) 그중에서도 특히 채권자들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근거로 들고 있는 대표적인 표현, 즉 ‘매춘으로 매도’하고, ‘일본군/일본제국의 동지이자 협력자로 매도’하고, ‘성적 착취와 학대를 당한 피해자임을 부정’했으며, ‘허위사실’로써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채무자 박유하의 진술과 준비서면을 통해 명백히 사실 무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이 320쪽인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에서 108개소를 명예훼손의 근거로 적시하는 채권자들(의 대리인 혹은 지원자)의 주장은 심각한 오독이거나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의도 또는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백보천보 양보해서, 설사 채권자들이 이 도서의 내용에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이 책이 법학 원론과 판례를 통해 확립된 ‘위법성 조각 사유’인 ‘진실한 사실’을 담고 있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책이라는 점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채권자들의 신청은 기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출판의 경위에 대하여

본 채무자는 출판인입니다. 따라서 먼저 이 도서를 출판하게 된 경위, 그리고 채무자 박유하 교수의 문제의식에 대한 본 채무자의 이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본 채무자가 저자인 채무자 박유하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5월경의 일입니다. 2년 동안의 일본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 외국인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출판사 (주)사회평론의 편집주간 직을 맡은 본인에게 처음 주어진 원고가 박유하 교수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초고였습니다. 저자는 게이오(慶應) 대학과 와세다(早稻田)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고, 귀국 후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시리즈(웅진출판)를 기획-번역하고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같은 일본의 지성을 소개하는 작업을 해온 저명한 일본/일본문학 전문가였습니다. 그 책은 본 채무자가 편집을 맡아 2000년 8월 1일자로 출간되었고,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은 없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들의 허실에 대해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한 책으로서 언론의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사직한 이후인 2004년 4월에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역시 같은 (주)사회평론에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2) 본 채무자는 2001년 말에 출판사 ‘뿌리와이파리’를 창립했고, 2005년 9월 30일자로 박유하 교수의 전작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출간은 본 채무자에게는 뿌리와이파리의 ‘동아시아(한․중․일) 민중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공동의 미래를 향한 우호협력’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관심들은 『공자의 식탁―중화요리 4,000년의 문화사』,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2002), 『민족은 없다』(2003), 『한시와 일화로 보는 꽃의 중국문화사』,『해삼의 눈』,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옥황상제에서 서왕모까지, 도교의 신과 신선 이야기』, 『미녀란 무엇인가―중․일 미인의 비교문화사』(2004), 『일본불교사』(2005), 『돈가스의 탄생―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자이니치(在日),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 『요시카와 고지로의 공자와 논어』(2006),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2008),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2009), 『일본국헌법의 탄생』(2010), 『근대 도시공간의 문화경험―도시공간으로 본 일본근대사』(2011) 등등의 책을 관통하며 ‘뿌리와이파리’에서 출간된 도서 130여 종의 중요한 한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자 박유하 교수는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의 지은이인 한일 지식인들의 모임 ‘한일, 연대 21’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3)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는 한일 간의 ‘화해’를 가로막고 해묵은 갈등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가장 첨예한 현안 네 가지에 대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서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비판적인 제언을 한 책입니다. 이 책의 출간 ‘경위’는 간단합니다. 출판인인 본 채무자가 친분이 있는 저자에게 좋은 책을 한 권 써달라고 부탁했고, 그 부탁이 마침 저자가 관심을 가진 주제, 즉 한일 간의 ‘화해’를 위해 한국/일본의 시민과 지식인이 한국/일본 사회의 일반화된 ‘이미지’와 인식틀을 깨고 함께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다는 의지와 만나 원고를 쓰고 편집해서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편협한)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대단히 논쟁적인 주장을 편 까닭인지 이 책은 한국에서는 3,000부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다음해인 2006년의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고, 일본어판(헤이본샤平凡社 발행)은 아사히(朝日) 신문사에서 수여하는 권위 있는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을 한국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수상하는 등 그 문제의식과 ‘용기’를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4) 다만,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가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워낙 민감하고 의견 대립이 첨예한 데다가, 저자의 주장 또한 대단히 근본적이고 (한일 양국의 기존의 인식과 주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까닭에, 한국의 이른바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도, 일본의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도, 다양한 찬성과 반대의 주장들이 나오고 비판-반비판과 논쟁이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5) 그런 가운데, 저자 박유하 교수가 연구년 등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체류하며 연구하고 있었던 2011~12년 사이에도,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문제, 독도 문제(바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가 다루고 있는 현안들입니다.) 등을 둘러싸고 한일 관계는 더욱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일본 아사히 신문사의 웹논단 ‘론자(論座)’에 일본인 독자들을 향해 ‘위안부 문제’ 관련 글(이 내용도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에 약간 수정되어 실려 있습니다.)을 연재하는 등 한일관계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오던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다시 한번 총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조명하고 그 해결책을 한일 양국의 독자들과 함께 모색하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본 채무자에게 연락을 해왔고, 본 채무자는 원고를 보내달라고 응답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5~9쪽의 ‘서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6) 2012년 11월경에 초고를 받은 본인은 민감한 사안을 다룬 책이기에 본 채무자가 직접 편집작업을 맡기로 했고, 저자가 서너 차례에 걸쳐 원고의 구성을 바꾸고 내용을 수정보충하는 과정에서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2013년 7월 22일자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출간했고, 8월 초순에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국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에 큼직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이하, 경향-동아-한국일보 서평기사 링크: 여기선 삭제함]

(7) 이 책의 문제의식은 책 뒤표지의 글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

위안부 문제는 왜 20년이 되도록 풀리지 않는가
이 책은 그 원인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그 ‘복잡한 구조’를 해부한다

● ‘강제로 끌려간 20만 명의 소녀’라는 인식은 정신대와 위안부의 혼동,
업자의 소거, 예외적인 사례의 일반화된 수용에 의해 만들어진 상이다.
● ‘위안부’의 불행을 낳은 것은 식민지배와 가난과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고,
그들의 체험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 위안부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의식되지 않았던 ‘죄’와
이미 존재하는 법에 저촉되는 ‘범죄’를 구별해서 물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국가의 세력확장)의 문제로 다루었다. 근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위안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며, 구체적으로는 일본과 한국에 존재하는 ‘미군기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 것은 ‘냉전’적 ‘좌우갈등’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결론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모두가 함께 보는 일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풀고 제국과 냉전이 남긴 문제들을 함께 넘어설 수 있는 ‘동아시아’를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다.”

본 채무자는 저자 박유하 교수의 문제의식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며, 저자의 학자적 양심과 식견, 한일 간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우애와 평화의 동아시아’라는 공동의 미래를 향한 열정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이 ‘위안부 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으며, 20년 동안 쌓여온 한일 두 나라의 다양한 인식 및 이해관계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논쟁적인 글이라는 사실 또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앞장서서 많은 성과를 거둔 한편으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왔고 지금의 운동을 잘못 이끌고 있(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이 책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대협을 중심으로 한 반발이 있으리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의 온갖 문제들이 그렇듯이 ‘위안부 문제’ 또한 비판과 반비판, 토론을 통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관한 공론장의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서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을 위한 한 학자의 충정과 거기에 대한 본 출판인의 공감의 산물입니다.

3. 학문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그리고 공론장에서 더욱 심층적이고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토론에 대하여

(1)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채무자 박유하 교수와 도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은 결코 채권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할머니들이 이미 아흔 살 안팎의 고령에 이르렀고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분도 많은 터에 20년이 되도록 이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고 심지어 더 악화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조를 규명하고 한일 양국과 두 나라 국민들이 어떻게 미래지향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를 심도 있게 고찰한 대단히 귀중한 연구-출판물입니다.

(2)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되짚고 진정한 해결의 길을 모색하면서,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서서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운동과 움직임들을 평가하고 비판해가며 공통의 인식틀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주류의 인식과 이미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또한 피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론장의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 도서의 출간 이후에 나온 여러 신문 및 논객, 독자들의 큼직한 기사와 서평들은, 저자의 주장이 우리 사회/독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에 비추어볼 때 ‘불편’할 수 있고 ‘자극적’일 수 있지만 공론장에서 토론되어야 할 ‘의미있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류’의 비판과 감성적 반발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이 ‘가처분신청’ 사태 이후에도 저자의 견해와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의미있는 문제제기’라는 평가는 적지 않았습니다.

(4) 이 ‘가처분신청’이 이루어진 직후인 2014년 6월 20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간의 공방의 경위’라는 제목의 ‘고노(河野) 담화 검증 보고서’ 결과를 발표했고, 8월 5일자 아사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전쟁 때 제주도에 가서 여성을 강제로 끌고 왔다’는 증언이 거짓으로 판명된 사실과 관련하여 그 증언과 관련된 이전의 기사들을 취소했습니다. 식민지지배와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사안에서 진보적인 아사히 신문은 이후 우익 세력과 산케이 신문, 요미우리 신문 같은 우익 신문의 공격을 받아 존폐가 거론될 정도로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열려왔던 정례 한일 국장급 논의 또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됩니다. 이런 작금의 상황을 단순히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는’ 일본의 우경화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70년,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는 2015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인 공동의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가야 할 두 나라의 정부와 국민들이 ‘위안부 문제’를 더욱 폭넓게, 더욱 깊이 있게 고찰하고 두 나라 안에서, 그리고 두 나라가 함께 더욱 활발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할 것입니다.

(5) 거듭 말씀드리지만, 채무자 박유하 교수와 도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은 결코 채권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 않습니다. 형법 제309조 1항의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제307조 1항의 죄를 범한 자’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방할 의사도 목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307조 1항과 2항의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채권자들(의 대리인)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느꼈다고 하더라도, 제310조에 규정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그러므로, 본 도서와 저자인 채무자 박유하 교수는 민주적 기본 질서의 핵심을 이루는 헌법상의 학문의 자유(제22조 1항), 언론-출판의 자유(제21조 1항),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아 마땅합니다. 제21조 3항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이 ‘가처분신청’, 그리고 채무자들의 반박 혹은 입장 표명조차도 거의 없이 쏟아진 관련 언론 보도들이야말로 위 헌법상의 자유들을 위축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7) 결론적으로 본 도서의 내용과 주장은, 사실과 해석, 주장과 비판 모두 학계와 국민/독자들의 공론장에서 벌어지는 토론에 맡겨져야 할 사안이지, 결코 법정에서 다툴 바가 아닙니다.

2014. 10. 21.
채무자 정종주

서울동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 귀중

작성일: 2014.10.24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3395771687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