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13

멀리 사는 페친이 아름다운 찻잔을 보내 주었다. 황금빛찻잔. 바깥이 아니라 안쪽이 황금빛이어서 마음에 든다. 귀모양으로 살짝 구부러져 있는 건, “차를 마실 때 귀기울이는 순간을 떠올리며”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페친이 늘어나다 보니 진득하게 “귀기울이는 순간”이 적어진다. 읽었다는 표시로(공감했다는 표시조차)”좋아요”를 누르지만 가볍고 가벼운 소통에 회의가 든다. 아무래도 페친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어제 대통령기자회견은 다 들어 볼 생각이었는데 그만 십분을 못 넘기고 꺼 버렸다. 대통령에게 부족한 건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귀기울이는” 자세였다. 소통은 귀기울여, 정성껏 듣는 일에서 가능해진다. 대통령은 会見을 했지만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보지 않았다.

대통령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이의 말(생각)은 듣지 않고 배제하려는 욕망이 진영과 상관없이 넘쳐난다. 그래서 내겐 경제적 양극화 이상으로 심리적 양분화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프랑스테러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다. 갈등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소리없는 총성을 매일밤 듣는 기분. 대체적으로 따뜻하고 지적이지만, 페북에도 조롱과 냉소와 욕설이 넘친다.

어제 나는 책의 초고를 보여주기까지 했던 가까운 지인에게 아주 약간 비판을 받고, 배신감에 잠시 분노했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건 내가, 책에 대한 모든 비판이 현시점에서는 고발을 지지하는 일이 된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고발취지가 이제 “논지”를 문제시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문제시해 왔던 “강자로서의 피해자”가 된 순간이기도 했다.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어떤 비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자세. 피해자의 오만.

어쩌면 우리의 대통령의 “불통”도 거기서 온 건지도 모르겠다. 압도적 폭력을 만났던 트라우마가 만든 도덕적 우위.

아무튼 분열과 혐오가 넘치는 사회를 차세대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으니 “귀기울이는” 일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다. 깊고 고요한 밤과 마주하는 것처럼. 우주처럼 이해불가한 안팎의 타자들에게.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40619592631621

渦中日記 2015/1/10

페북에 <받은 메시지함>외에 <기타메시지>함도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고발사태 직후에 받은 메시지들을 반년이 넘도록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반년이나 늦은 답장들을 보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주신 분은 이미 계정이 없었다. 너무 죄송한 마음. 혹 이 분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고 연락이 닿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 주시면 좋겠다.
당시 받은 메시지들을 뒤늦게 읽으면서 약간 가슴이 싸아했다.
이제 곧 7개월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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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는 미국에 30년을 거주하고 있는 ……라고 합니다. 메시지를 보내고자 마음 먹은 이유는,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에 반하는 이슈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책을 저술하신 교수님의 노고와 용기에 감사드리고, 현재 교수님께 가해지는 수많은 비판과 질타에 굴하지 마십사고 응원하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제가 살았던 Pasadena 에서 20여분 거리의 글렌데일에 위안부 동상을 세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부터 였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왜 애정이 없겠으며, 일본의 침략에 왜 분노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글렌데일이 자매도시들을 소개하기 위해 할애한 공원에 한국이 제일 먼저 위안부 소녀동상을 세웠다는 사실은 시의 취지와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는 동상건립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자료들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제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점은 위안부가 차출되었던 다른 나라들은 조용한데, 왜 유독 한국만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약 한달 전 웹에서 <제국의 위안부>의 발췌부분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비로서 많은 부분들이 이해되었습니다. 특히나, 책은 위안부 이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되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사신 저의 어머님이 말씀하셨던 부분들과도 일치했습니다.

현재 교수님께 비판을 가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교수님이 들춰내신 팩트가 불편한 듯 합니다. 팩트의 일부만 조명했다는 사람들은, 이전에는 알려진 팩트가 거의 없었고 감정만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사람들은 “강제 vs. 자발” 이란 이슈가 칼로 무우쪽 자르듯이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임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강제라고만 억지부리며 “매춘”의 측면에는 한점의 고려없이 무조건 비방만하고 나서는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수님이 책에서 기술하신 한국측 실수/조작/통제 등은 아예 무시합니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이런 편파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특히나 그 감정이 적개감일 때, 사실에 근거하고 이성에 입각하여,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라 봅니다. 교수님의 저서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는 만드셨지만,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해 주셨다는 점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오는 어려움들을, 책을 저술하셨을 때 가지셨던 동일한 용기로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눌한 한국말로 두서없는 글을 쓰서 죄송합니다만, 소리없이 교수님을 응원하고, 저서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2014/6/2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38835126143401

渦中日記 2015/1/5-2

일본어판을 만든 편집자가 보내준 어제날짜 마이니치신문사설을 보면 일본인들이 내가 던진 공을 받아 주었다고 느낀다.
이런 자료들을 법원에 제출하면 다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원고측은 일본인들이 내 책에 호응하는 건 내가 일본의 나팔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 재판이란 서로 소설을 쓰는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우울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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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70년 담화에 필요한 것은,전후 50년 때 발표된 무라야마담화를 전후일본의 흔들림없는 기반으로 삼고,그에 입각해 미래를 전망하는 자세일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잘못 정하여><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아시아국가들에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끼쳤다>라는 인식이 핵심이다 .
(중략)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의 오보를 계기로 위안부문제 제기자체를 부당하다고 하는 논조가 생겨나고 있다. 사실관계를 수정하는 건 필수적이지만, 위안부를 필요로 했던 사회의 추악함은 어떤 반론으로도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최근저서<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설을 비판하면서 <전쟁에 동원된 모든 이들의 비극 안에 위안부의 비참을 위치시켜야 성까지도 동원하는 “국가”의 기괴함이 드러나게 된다>고 쓰고 있다.
(중략)
이제 역사를 배타적인 민족주의로부터 차단할 때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야만 그 주장은 받아들여진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는 편협한 자기중심역사에 갇혀서는 안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3380108998013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8/7-2

오후에 모월간지와 인터뷰를 했다.의뢰가 왔을 때 주저한 이유가 두가지 있었지만,결국 수락한 이유는 기자가 고발사태 이후 나와 책에 대해 나온 언론보도에 왜곡이 많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기사내용은 물론 제목까지 확인하고 합의된 시점에서 내보내기로 약속.

만나보니 그의 문제의식이 진심인 것 같아 다소 안심했는데,그런 나에게 “기사가 나와봐야 안다”고 견제구를 날린 건 인터뷰에 동석해 주었던 젊은 친구들.
기자를 믿지 못한 건지 나를 믿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한달 전부터 이들이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34622456564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