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9/13

문예춘추사에 보낼 짧은 원고를 쓰는 중.
해마다 그해의 중요문제에 관한 해설과 해법을 정리해서 발간한다고 하는데, 참고용으로 보내 온 작년도 목차를 보니 작년에 위안부문제를 담당한 건 산케이신문기자다.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부정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대체적으로 보수인사들이 많아 보이지만, 국가의 여성정책에 대한 우에노치즈코선생의 비판글을 게재한 걸 보니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지난번에 <월간문예춘추>인터뷰에 응한 건 강제연행이라는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중인 아사히신문의 우에무라기자의 글을 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우파일본인기자가 아니라 한국인인 나에게 의뢰했으니 조금은 일본보수층이 변한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다른 글도 완성해야 해서, 오늘은 아름다운 가을날을 집안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가학적 하루가 될 예정. ㅠ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94277560599156&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6/10

1년전에, 가깝게 지내던 위안부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무렵에 올렸던 글과 할머니의 영상들이 나눔의집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이 아침, 배춘희 할머니의 명복을 다시 빈다..

어제 젊은 연구자들의(대부분 남성으로 보이는데 이 점이 내겐 흥미롭다. 위안부문제 연구자 빼면 내게 비판적인 학자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그 이유를 조만간 쓸 생각이다)내게 대한 비판이 포스팅된 걸 보았다.
지금 좀 바쁘고, 아직 더 올린다니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한가지만 우선 말해 둔다.

내가 한 것으로 전하는 이들의 요약에는 내가 하지 않은 말(글)들이 있다. 내가 실망하는 건 이 부분이다. 얼마전에 윤명숙 선생도 일본신문에서 내가 “일본 국가책임보다 업자 책임을 더 강조”했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조선인 업자가 더 많다”고 쓰지 않았고 일본인업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강제연행은 없었다”고도 쓰지 않았다.
내나름으로 신중하게 접근한 기술을 거칠게 정리하면서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려 하는 이들의 눈과 심리가, 나는 진심으로 걱정된다. 패기는 때로 세상을 바꾸지만, 만용은 해악일 뿐이다.

정영환교수의 비판에 대답할 시간을 여전히 갖지 못했지만(일본어 비판의 경우, 지원자들은 다수고 나는 혼자 대답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하지 않은 말로 나를 비판하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 나를 위축시킨다)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니 반론을 조만간 간단하게라도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왜곡을 단순한 오독으로 치부하거나 웃고 넘길 수 없는 건, 다들 알다시피 나는 지금 고소당한 몸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나를 “형무소에 넣고 막대한 돈을 지불케 하라!”는 요구와 싸워야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유하의 책은 나쁜 책”이라는 이들의 말들은 우선은

1.재판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 대한 고발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그럼 하고 싶은 비판도 못하느냐”고 말하겠지만 그런 구조를 만든 건 지원단체와 일부할머니들이다. 비판을 하고 싶다면 먼저 고발을 취하하라고 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2. 내가 책에 쓰지 않은 말,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하고 쓴 것처럼 말하는 건 “허위배포”다. “학자의 말”이면 그에 해당되지 않는 건지 여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오늘이후에도 올리겠다고 한 내용, 지금이라도 재확인하고 내보내 주기 바란다. 내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훗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삭제판도 일본어판도 판매하지 말라”고 나를 옥죄는 이들의 선두에 명색이 학자인 이들이 서 있다는 것이, 내겐 작금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풍경으로 보인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1391193554460

渦中日記 2014/11/24 – 모럴의 상실

모레, 26일에 제3차 공판이 있다.

지난 주에 시작한 <위안부문제 미니강좌>에서는 “위안부=소녀”라는 인식이 왜 생겼는지를 썼었다. 이번주엔 “강제성”에 대해 쓸 생각인데 원고측이 제출한 서면을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보인다.

“일제하 조선에서의 징집형태는, 식민지배와 불가분 관계를 갖고 있는데, 필리핀이나 중국등 점령지에서는 군인이 전면에 나섰지만, 식민지에서는 군인이 대대적으로 총검을 앞세우고 나물캐는 조선처녀를 트럭에 강제로 실어서 끌고 가는 것과 같은 형태의 징집보다는, 취업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이미 조선에 이식되어 있던 공창제도의 매커니즘이 이용되었습니다.
즉, 식민지 동원 체제를 통해 조선인 여성의 성을 용이하게 착취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구비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굳이 조선인여성에게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점령지와 식민지의 차이는, 바로 내가 한 이야기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한 이야기를, 인용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면서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근거로 쓰는 경우는 이미 여러번 겪었다. 이럴 때 나는, 그들의 “모럴”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원고측이 더이상 “군에 의한 강제연행”설을 택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앙굴렘만화제에 출품한 만화가들이 그런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고, 한국과 세계에 유통시켜 왔다는 점이다.

일본의 반한감정은, 사실 과장/왜곡된 기억이상으로, 이런 식의 “모럴의 상실”에도 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4172146276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