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형사 2심 판결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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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의적인 판결

2017년10월27일, 서울고등법원은 나의 책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위안부에 대한 명예훼손을 한 책으로 판단하고 벌금 1000만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2017년 1월 1심에서의 무죄 판결이후 나를 유죄로 판결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이 아님에도 무죄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말하자면, 2심은 같은 책에 대한 판단을 증거가 아니라, 책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만으로 뒤집었다. 당연히 승복할 수 없었고 나와 변호사는 곧바로(10월30일) 상고했다. 법원에 제출할 상고이유서는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쓰게 되겠지만, 아래는 재판부뿐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선 간단히 써보는 글이다.

2심 판결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된 조선인위안부’와는 다른 위안부상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저자는 ‘조선인위안부의 고통’에 관해서도 이 책에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책에서의 기술 전부에 쓰고 있지는 않다. 그 때문에 ‘자발적 매춘부였던 일본인위안부와는 다른, 성노예 조선인위안부’라는, 우리사회와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인식과는 다른 인식을 독자가 갖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다. 즉 ‘조선인 위안부=자발적 매춘부’라는 인식이다. 또한 유엔보고서등 국제사회와 일본의 고노담화등이 제시하는 인식에 따르면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인식은 명백한 허위이다. 저자의 인식을 허위로 단정하는 이유는 국제사회의 인식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인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국제사회의 인식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와 다른 인식을 말했다. 말하자면 ‘허위’를 말했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하면 대상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것인지를 인식했는지 여부도 명예훼손 여부 판정에서는 중요한데, 저자는 오래 위안부문제를 연구했으므로 그 파생효과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허위사실 적시와 집필목적에서 ‘고의(범의)’가 인정되므로 유죄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2심 판결은 ‘독자의 독해에 저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나에게 내려진 ‘벌금 1,000만원’을 검찰이 구형한 3년 징역형보다 가벼워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혹은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1,000만원이라는 액수는 징역이라면 5년에 해당하는, 명예훼손 관련 벌금형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금액이다. 재판부는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처럼 강조했지만 징역형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3년 이상의 징역 형에 해당하는 처벌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마치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명예훼손법률상 유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해당내용이 ‘사실’이어야 할 것이 첫번째 조건이 된다. 나에게 무죄를 내린 1심은 검찰이 지적한 35곳 중 30곳을 ‘의견표명’으로 규정하고 처음부터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5곳은 ‘사실’에 관한 기술로 규정하면서도 위안부의 사회적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 아니라거나, 개개인을 특정한 것이 아니므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저자에게 명예훼손을 하려는 목적(고의)이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위안부문제는 국민들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는 공적관심사항이므로 활발한 공개토론과 여론형성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 해야 한다면서 무죄를 내렸던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기까지 1심재판부는 무려 1년에 걸쳐 10회 넘게 재판을 진행했고, 본재판 이후에는 매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시간을 들여 재판을 진행했다. 검사는 나를 비판한 학자들의 논리를 들고 와 나의 ‘범죄’를 주장했고, 결국 법정에서의 공방은 학술세미나와 다름없는 내용이 되었다. 그에 비해 2심은 고작 4번 진행되었고, 매번 한두시간만에 끝났다. 그렇다면 1심에서 제출된 방대한 자료를 세심하게 봐야만 이 사건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을 터인데 2심 판결은 결코 그랬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 왜곡과 소송의 본질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검사가 제출한 왜곡된 책 요약(악의적인 독해)을 그대로 차용해 사용했다는 점이다. 아래에 인용해 두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책의 취지를 충분히 살펴 요약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가장 신경을 써서 독자의 오해가 없도록 쓴 부분에 관해 재판부는 검사가 멋대로 왜곡한 요약을 가져와 내가 한 말처럼 왜곡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위안부는 강제 연행되지 않았다’고 쓰지 않았다. 일본군의 모집과 관여/관리도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 관여했는지 자세히 썼다.

“조선인 위안부가 해야 할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면서 본인 혹은 부모의 선택에 의해 자발적으로 갔다” 고 요약된 부분도 엉터리 요약이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는 것도 내 말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위안부 비판자들의 말이다. “1996년 시점에서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42)이라는 표현 역시 재판부가 인용한 유엔보고서의 내용이다. 이런 논리라면 박유하가 `위안부는 자발적매춘부`라고 했다고 보도해 온 모든 언론과 개인도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나는 “법률상 배상책임이나 공식사죄를 받을 수도 없다” (2)고 한 적이 없다. 나는 그런 방식만을 지고지선의 해결방법으로 생각해 온 지원단체의 운동방식과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다. “공식사죄를 받을 수 없다”가 아니라 20년 이상 법적책임만을 주장해온 지원단체 생각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니 한일협의체를 만들어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 내가 책에 쓴 내용이다. 한국판 간행 이후 나온 일본판에서는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썼다.

내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해결방식을 제시” (39)했다는 말은 감사의 주장인데, 앞에서 쓴 것처럼 나는 한국어판에서는 구체적인 해결방식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고측도, 검사도 재판과정에서 내내 이런 말로 비난했는데 실은 이 주장에 ‘제국의 위안부’ 소송의 본질이 있다. 원고측(지원단체)이 소송을 시작한 건 사실, `위안부의 명예`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운동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나의 책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이라는 부제목에서 나타낸 것처럼 90년대 이후 위안부문제지원운동의 문제를 비판한 책이기도 한데, 그것이 고발의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장해 온 `법적책임`에 대해 아는 분들은 최소한 내가 만난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는 안 계셨다.

3. ‘사실적시’라는 전제에 대해

이 판결은 나의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기도 하다.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에서 모든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 아니고 직접적인 폭행·협박 또는 기망·유혹에 의해 위안부가 된 경우가 있으며, 일본국이나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강제연행을 한 증거가 없으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고, 민간인 포주나 업자에 의하여 강제력이 행사되었으며, 성적학대의 대가로 지급된 것은 소액인데다 그나마도 착취당했고, 일부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등 내용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32)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모집한 주체는 일본군이 아니라 업자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모집방법이 사용되었다. 일부 위안부들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된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위안부들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에 의하여 위안부가 되었다. 위안소 내에서 민간인 포주나 업자에 의해 강제력이 행사되었고, 성적학대의 대가로 지급된 것은 소액인데다 그나마 착취당했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식민지인으로서 애국이 강제되었고, 일부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적관계에 있었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37)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는 사회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고 조선인일본군 위안부들의 모습이나 처지가 매우 다양하며, 이 사건 도서는 피고인이 기존 자료를 토대로 현재 우리사회 주류적인 시각과는 다른 입장에서 위안부문제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내용이고, 이 사건 도서 곳곳에서 여러 예외적인 경우와 다양한 위안부들의 모습이나 처지가 서술되어 있다.”(41)

“예외적”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쓴 사람의 견해가 드러나 있어 꼭 전부가 완전한 건 아니지만 나의 책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한 요약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유죄가 내려졌을까?

사실 나는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의견’인지 ‘사실’인지가 중요하다고 듣고 학술적인 책에서의 모든 기술은 기본적으로 의견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학문이란 `진실`을 찾는 과정이지만, 아무리 내가 알게 된 사항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내가 믿었던 `사실` 역시 언제고 새로운 탐구와 학설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모든 학문은 `의견`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헤이든 화이트의 ‘메타역사'(1973)이후,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한 것처럼 보이는 역사서조차, 입수된 자료를 두고 학자가 문학적상상력으로 엮은 `문학`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은 점차 상식이 되고 있는 중이다. 다수의 지지와 검증을 거친 가설들이 세월과 공간을 넘어 ‘진리’, ‘사실’로 정착되어 오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은 문학적 플롯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플롯을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라는 인식은 과거의 역사에 겸허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모든 역사서/학술서는 ‘진실=사실’을 추구하는 것이되 하나의 사항을 최종적 ‘사실’로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적으로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 시점에서의 ‘인식’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더구나 나의 문맥이나 표현자체도 ‘의견’으로서 표현한 곳이 많다.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자체보다 증언을 포함해 역사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한 학술적 비평서이기 때문이다.

4. ‘사회적 평가 저하’라는 인식에 대해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나의 책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 시킨다고 말한다. 재판부가 말하는 ‘사회적 평가 저하’란 위안부 할머니들이 ‘강제연행을 주장’ 하고 있는데 그와 반대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은 그런 주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내 책을 읽은 이들 중에는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더 생각하게 보게 되었고, 이전에 못 느꼈던 슬픔을 느꼈다고 말해 준 사람이 적지 않다. 오로지 그들의 독해만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이 판결은 그렇게 읽은 모든 이들을 무시한 판결이다. 대신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이들의 존재와 그렇게 유인한 이들의 오독의 ‘가능성’을 편파적으로 우선시했다. 나에 대한 유죄판결은 그렇게 내려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한 메타역사서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층위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썼고, 하나의 ‘진실’ 자체보다 눈앞에 있는 진실(대상/정황)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를 모색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요한 만큼 ‘사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 ‘사실’을 둘러싸고 대립중인 이들이 서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지향하면서 쓴 책이다. 접점을 찾기 위해 양국 정부와 지원단체를 비판했지만, 위안부에 대해서는 부정도 비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시도한 건 오히려 그동안 지원단체가 묵과하거나 은폐했던 목소리를 살려내는 일이었다. 그동안 의식/ 무의식적으로 묻혀 왔던 그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야 말로 과거와의 대면에서 성실한 방식– 바람직한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나의 그런 시도를 인정하면서도, 나의 책에 반발한 지원단체(와 검찰)의 나의 책에 대한 왜곡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조차 제대로 읽고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면서도, 이 판결은 결국 재판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독자를 무시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판결문에 일부 요약된 것처럼, 나는 ‘위안부의 자발성’을 강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구조를 만든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비판했다. 설사 자발적으로 간 위안부가 있다 하더라도, 그 대부분은 가족을 위해 희생한 경우라고도 썼다. ‘(관리) 매춘’이라는 단어는 재판부가 인용한 유엔보고서와 여러 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치평가와는 무관한 중립적인, 하나의 정황설명일 뿐이다. 문맥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하나의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되어야 한다면, 1996년에 보고서를 작성한 유엔보고관, 그리고 일본군위안소를 국가가 관리한 공창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는 다른 모든 학자들도 기소되고 유죄가 내려져야 한다.

5. ‘허위’라는 인식에 대해

재판부가 나의 책을 허위라고 말하기 위해 인용한 자료는 90년대 중반, 즉 20년도 더 전에 나온 자료들이다. 그나마 고노담화는 일본정부가 직접 조사해 내놓은 견해지만, 다른 유엔보고서나 국제사법위윈회의 자료는 위안부문제가 문제로서 발생되기 시작한 초기에 지원단체들이 유엔등 국제사회에 제출한 자료등을 비전문가들이 검토해 나온 자료다.

물론 유엔의 쿠마라스와미보고서는 일본이나 한국, 그리고 북한에서 학자나 위안부의 증언을 듣고 종합한 보고서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취합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보고서는 지금은 부정되고 있는 (이 문제해결을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온 와다 하루키 교수조차 작년에 낸 책에서 요시다증언을 부정했다)요시다 증언등을 근거로 나온 보고서다. 그리고 동시대에 벌어졌던 유럽등 내전에서의 강간/학살과 똑같은 것으로 이해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학계는 이후 20년이상 연구를 진행했고 지금은 학계에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위안부의 물리적 강제연행’을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없다. 강제동원을 주장했던 이들은 지금은 동원에서의 강제가 아니라 위안소에서 부자유했다는 식으로 내용을 바꿔서 여전히 똑같은 ‘강제성’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연구자나 지원단체관계자들이 그런 정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강제연행’에 집착하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주장해 온 ‘법적책임’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 방식만이 정의로운 사죄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책을 ‘허위’라면서 고발한 이유는, 위안부할머니를 모욕하거나 일본의 책임을 부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법적책임’의 가능성에 내가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원단체의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 나를 ‘일본을 면죄하는 것’이라며 목청높여 비난하고 급기야 고발/기소에 이른 원고측과 검찰의 주장을 2심 재판부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재판부의 판결문은 1심에서 제출한 방대한 나의 자료를 완벽하게 무시했음을 보여준다.

재판부는 나의 책을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댓가를 받고 성매매를 했다`(31)”,”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 고 했다고 요약한다. 그러면서 “조선인 위안부는 대부분 일본국가나 일본군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 위안소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며 성노예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했다`” (31)는 것이야말로 “사실” 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모집은 했지만 일본군이 납치나 속임수를 허용한 정황이 없고 “공적으로는” (즉 공식적으로 강제연행을 지시한 흔적이 없고 오히려 그에 반하는 정황이 증언/수기등에서 보인다) 오히려 그런 정황을 단속한 정황이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안부할머니들이 말하는 ‘강제연행’을 부정한 것도 아니다. 당사자의 증언은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다만, 경찰과 같이 혹은 혼자 나타난 ‘군인’처럼 보였던 이들은 군속대우를 받고 군복을 지급받은 업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재판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곳을 나의 글로 착각하고, 그 부분에 내가 일일이 그에 반하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분을 ‘범죄’로 단정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대부분, 말한 이들을 비판하는 문맥, 혹은 전체를 정리하는 부분에서 쓰인 내용들이다. 오히려 지적된 대부분 앞뒤에 반박/비판이 들어가 있는데도. 그런 문맥을 무시하고 단어에만 반응한 셈이다.

재판부는 유엔보고서에 나오는 “일본정부가 강간수용소의 설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군부는 물리적 폭력, 유괴 강요와 속임수를 동원했다” (34)는 말, 일본군이 여성이나 소녀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업자에게 적극적 지원을 부여했다” 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 인식이 “위안부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 이라고 주장한다(36). 나의 책은 이런 “중요한 부분이 사실과 합치하지 않”기 때문에 “허위” 라는 것이다.

재판부가 유엔보고서쪽이 진실일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국제사회’라는 단어를 무조건 권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원고측과 검찰이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원고측은 그동안 나온 국제보고서들과 고노담화를 나의 ‘범죄’를 증명하는 자료로 검찰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들의 고소/기소 취지는 말하자면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까지 공유하는 인식을 박유하가 혼자 부정하고 있다’였다.

하지만 나는 고노담화를 부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높이 평가했다. 다만 해석을 달리 했을 뿐이다. 지원단체는 예전에는 고노담화가 강제성을 부정한 것이라면서 미봉책으로 치부하고 비판했었다. 그러다가 아베정권에서 고노담화가 재검증대상이 되자 갑자기 고노담화가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지키기에 나섰을 뿐이다.
그런데, 고노담화를 만든 전 관방장관은 나의 기소반대성명에 서명하기도 했다(2015/11,http://www.ptkks.net/approval/). 나의 해석이 그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었다면 그가 참여했을 리가 없다.

재판부는 국제보고서의 ‘성노예’인식이 옳고, 나의 책은 그에 반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지원단체의 성노예인식에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동시에 위안부가 분명히 `성노예적`존재라고 썼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하지만 피고인은 처음에는 일부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하거나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는 식으로 서술하다가 이 사건 표현들에서는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서술하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위 표현을 접하는 독자들은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또는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였고, 애국적으로 일본군과 협력하고 함께 전쟁을 수행했으며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서술되어 있고, 이러한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사건 표현들은 허위사실에 해당한다”(37)고 말한다.

이런 재판부의 인식은 ‘자발적 매춘부’라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만든 것이기도 한데, 원래는 지원단체의 인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 있던 이들이 오히려 ‘매춘’에 대해 차별적인 생각을 스스로 가졌거나(그들이 오로지 ‘순결한 소녀상’에 집착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20년 이상 여성인권운동을 하면서, 사회가 필요시하고 차별해 온 문제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시도한 나를 죄인으로 치부하고 고발한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한 상황을 모르는 채로, ‘사회가 위안부를 차별(사회적 평가 저하) 할 수 있으니 (저자의 의도가 그게 아니더라도) 처벌한다’ 고 한 셈이다.

6. 인물특정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나의 책이 특정 위안부를 지칭해 명예훼손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2심 재판부의 말이 맞다면 오히려 원고로 이름이 올라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개별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누구의 이름도 의식하지 않고 책을 썼다. 그런데 원고측이(검찰이) 나의 ‘허위’ 를 증명하기 위해 재판부에 제출한 나눔의 집 거주 다섯분의 구술서에 따르면 오히려 아무도 그런 경험을 한 분은 없다. 심지어 그 중에는 ‘보국대’로 갔다고 말한 분조차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내가 집필목적에 대해 쓴 서문중에서

“말하자면 한일양국은 20여년의 역사문제갈등을 거치면서 심각한 소통부재 상황에 빠져 버렸다. (중략) 그 갈등의 중심에 위안부문제가 있고, 그들(일본의 부정자)은 한국이 세계를 향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일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한번 원점으로 돌아가 위안부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38-39)라는 서문일부와, 이하 인용한 부분을 가져와 내가 구체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는 위안부를 특정했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과 일본사이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히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다. 피고인도 이 사건 도서에서 [한국의 위안부들과 지원단체는 그 후에도 일본정부와 세계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사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로 간주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는 사죄를 받아들였으므로 현재의 위안부 문제란 실은 이 몇십명의 위안부와 위안부지원단체가 주체가 된 한국인 위안부문제이기도 하다(171)] 라고 썼다” 면서 “스스로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나타내고 있는 사람에게만 명예훼손 문제가 생길 뿐” 이므로 “제3자가 일본군 위안부를 생각할 때는 전체 ‘조선인 위안부’보다는 우선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힌 ‘위안부피해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위안부를 “특정” 했다고 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 인용된 부분에서 내가 강조한 건 ‘한일갈등의 중심에 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일 뿐, ‘갈등을 빚고 있는 그 위안부’가 아니다. 이 부분에서도, 책 전체에서도 나는 위안부에게 잘못이 있다거나, 사죄요구가 옳지 않다고 쓴 적이 없다. 일부 할머니들에게 주어진 정보가 과연 정확했는지,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끈 지원단체의 사고가 과연 절대선인지를 의문시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300쪽이 넘는 나의 책을 읽으면서 위안부의 슬픔을 느꼈다는 이들은 대부분 재판부나 원고가 말하는 ‘특정한 그 위안부’가 아니라 ‘이름모를 위안부’, ‘전쟁터에서 동원된 위안부’를 떠올린 이들일 것이다. 그런 독자들이 실재하는 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은 편파적이고 자의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만일 내가 위안부문제를 그저 ‘사죄보상을 요구하는 그 위안부들의 문제’로 생각했다면 애써 ‘위안부의 슬픔과 고통’을 전하려는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을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기존지원단체과 같은 규탄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귀를 기울이면서, 문제적인 생각을 비판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위안부’의 실상을 보여주는 추상적인 ‘위안부’가 있고, 현재의 한일갈등의 중심인 구체적인 ‘위안부’ 할머니가 있다. 나의 책은 후자에도 주목했지만, 고찰 대상은 어디까지나 전자였다. 검찰이 매춘/강제성/동지적관계, 이 세 부분을 문제삼았다는 것은 전자를 문제삼아 기소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이름모를 위안부’를 포함해 모든 (추상적) 위안부에 관해 쓴 부분에 주목하면서 내가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현재의 구체적인) 위안부’를 특정했다는 말은 그들의 기소취지에 비추어 봐도 비논리적이다. 설사 오로지 나의 책을 읽고 현재의 위안부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을 의도하지 않은 한 그건 저자의 책임일 수 없다. 나의 고찰 대상이 어디까지나 전쟁터에서 사망한 ‘그녀들 모두’였다는 건 위안부에 대해 설명한 책의 1부를 이렇게 끝맺었다는 만으로도 분명하다. (2부와 3부는 90년대 이후의 갈등양상에 대해 썼고 4부는 현대가 과거를 반복하고 있는 구조에 대해 썼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귀기울여야 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이들이 아닐까.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다 생명을 잃은 이들—말없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일본이 사죄해야 하는 대상도 어쩌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들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언어와 이름을 잃은채로 성과 생명을 ‘국가를 위해’바쳐야 했던 조선의 여성들. ‘제국의 위안부’들에게.” (104)

7. 목적 (“고의”)에 대해- ‘사회적 평가저하’를 한 건 누구인가?

재판부는 나의 책이 다양한 위안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은 이 사건 표현들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서술하지 않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를 접하는 독자들은 마치 대부분 또는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였고 애국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하고 함께 전쟁을 수행했으며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피고인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면서 이 사건 표현들을 서술하였다고 보인다”고 했다 (41).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를 집필한 목적, 이 사건 도서의 성격 및 전체내용을 감안하더라도 피고인은 이 사건 표현들에서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 점과 그 사실이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 시킬 만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보인다. 피고인에게 명예훼손 고의가 인정된다” 는 것이다. (41-41)

말하자면 재판부는 그저 ‘가능성’을 처벌하고자 했고, 그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책의 모든 부분에서 재판부 스스로가 옳게 요약하기도 한 나의 책의 취지를 반복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책이라는 매체가 한 개인의 표현이기도 한 이상, 이런 생각은 개인의 표현방식에까지 국가가 관여해야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일본과 한국의 독자를 동시에 염두에 두면서 책을 썼고 각각의 부분에서 그 독자들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나갔다. 같은 소재를 두고 약간 다른 뉘앙스로 기술한 부분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진실을 가능한 한 보되 더 중요한 건 그 진실을 ‘어떻게 생각할 지’ 여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고와 검찰과 재판부는 나의 책이 정작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말하는 이들에 대해 비판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부분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단어에만 집착했다. 하지만 단어자체가 문제라면, 나를 고발한 이후 언론이 나를 비난하면서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고 한 박유하”라고 반복해 온 시간들, 이 3년반의 시간들이야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모욕적인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위안부를 비방할 의도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웬만한 독해력을 가진 독자라면 반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썼다. 책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악의적’으로 읽는 독자가 설사 있다 해도 그건 저자의 책임이 아니다.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한 건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소녀’만 피해자로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인식이 오히려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상황이었다. 설사 자발적으로 갔다 해도 그 사실이 은폐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50년 가까이 위안부 체험을 한 이들이 침묵해야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운 지원자들조차, 그러한 구조를 오히려 공고히 해 버린 건 단순한 오해나 시대적인 문제가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운동의 확산을 위해 전략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 측면이 있다. 나는 그 전략을 이해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전략이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명백히 적어둔 나의 집필목적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지원단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고의/범의를 보려 했다.

물론, 우리사회의 매춘에 대한 인식—‘사회적 평가 저하’를 재판부가 우려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책이 나온 후 나의 책을 근거로 그저 ‘위안부는 매춘부’로 생각하고 위안부에 대해 비판적이 된 이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렇게 읽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저 나의 책을 멋대로 왜곡해 자신들이 이미 해 왔던 말을 보완하기 위해 이용한 이들일 뿐이다. 중요한 건 매춘여부가 아니라 그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해여부다. 나는 오로지 그 옛날 소녀/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더 많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지향하며 자료와 글쓰기 방식을 골랐다. 그런 나의 책을 왜곡한 건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렇게 대립해 온 이들의 접점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책을 있는 대로 받아들여 준 건 그들과는 상관없는 일반독자들이었다. 이번 판결은 그렇게 ‘오독하는 독자들 ‘,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독자들’을 우선시한, 사회적 성숙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판결이다.

8. 식민지 트라우마

원고측과 검찰과 재판부의 생각과 판단의 저변에는 우리의 식민지 트라우마가 있다.

예를 들면 재판부는 내가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기본적인 관계는 같다’고 한 부분을 들어 문제시했다. 물론 나는 완전히 같지 않다고 분명히 썼고, 조선인은 기본적으로 차별구조 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에 동원되어 다수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생활이 가져다 준 ‘여성’으로서의 고통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가 없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대표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위안부속에서 굳이 한일차이를 보고 싶어 하는 건 그들이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성보다 민족에서 보고 싶어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아이덴티티는 다양하고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된 것이 ‘여성’이기 때문이었는지, ‘조선인’이기 때문이었는지는 한마디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양쪽에 다 이유가 있었다고 썼다. 하지만 기존학자 대부분은 ‘여성의 인권’을 앞세워 운동과 연구를 해 왔으면서도, ‘일본’국적을 갖고 태어난 ‘여성’의 인권은 애써 무시 혹은 간과해 왔다. 그건 세계연대를 위해 ‘여성문제’임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조선인 위안부의 ‘여성’으로서의 고난 역시 도외시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여성’이면서도 공적으로는 ‘남성’을 비판할 수 없었고, 자신들을 착취한 ‘계급’의 문제를 말하지도 못했다. 물론 증언에서는 그런 구조를 충분히 말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묻혔던 말들을 살려내 언어화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만 여기서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지원단체와 일부 학자는 자신들의 인식만이 절대 옳은 것으로 간주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려 했다. 혹은 재판 중에 나를 비판하는 일로 직간접으로 고발에 가담했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서’를 지향한 것이 아닌 이 책을 두고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더구나 그들은 나의 책이 이른바 일본우익의 책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일본우익과 같다고 외치는 일로 나에 대한 국민비난을 조장하고, 대중에 의한 끔찍한 여성혐오적 비난과 협박을 방치했다. 이것이 대한민국과 재일교포 ‘페미니스트’와 위안부관련 학자와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3년 반 동안 보여준 모습이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결국 그들의 손을 든 것이다.

재판부는 ‘동지적 관계’도 ‘허위’로 판단했지만, 나는 ‘군수품으로서의 동지’라고 분명히 적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나의 책이 ‘애국을 강제했다’고 쓰고 있다고 적고 있으니 내가 강조한 메시지는 분명히 받아든 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원고측과 검찰의 왜곡요약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가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하였다’고 썼다고 결론적으로 말한다. (물론 실제로 ‘애국적/자긍적’이었다고 스스로 말한 자료들도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목소리까지 포함해 위안부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이어야 한다. 한사람의 인간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싶다면.)

원고측 고발, 검찰기소, 그리고 이번 형사 2심 판결까지, 이들이 나의 책을 왜곡해 언급할 때마다, 그리고 이들의 말을 그대로 언론이 보도하고 SNS가 확신시킬 때마다, 나는 이들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해 학자로서의 명예에 상처를 입는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로 인해 실제로 ‘사회적평가가 저하’된 건 다름아닌 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원고측-고발자들의 목적이었다. 나에게 이 3년반동안 쏟아진 수많은 비난과 협박들은 그들의 의도가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공정하게 평가해야 할 사법부가 스스로 국가의 얼굴을 한 민간인의 손을 들어 한사람의 학자에게 형사처벌을 내린, 2017년 대한민국의 공간이 내게는 아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형사1심] 박유하, 검찰기소장 반박문

PDF 로 다운받기 : 검찰기소장 반박문

1. 서론

(1) 검찰은, ‘피고인이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① 위안부를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하였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하였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함으로써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먼저, 뒤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첫째, 피고인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적도 없고,
둘째, 피고인은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검찰이 말하는 의미로는
① 위안부를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한 바도 없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한 적도 없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한 바도 전혀 없습니다.

(2) 피고인을 기소한 검찰의 공소장은, <기초사실>과 <범죄사실>, 그리고 고소인측이 지목하고 민사재판부가 2015. 2.에 그 일부를 인정한 34개 항목에 1항목을 추가한 <범죄일람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는, 책의 전체적인 그리고 부분적인 문맥을 무시하고, ‘고소인측의 웃지 못할 오독(예를 들면 “해방 70년“이나 지났으니 일제시대를 다시한번 돌아보자는 제언부분을 위안부할머니에 대해 말한 부분으로 오독,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것처럼 간주)에 더해 곡해로 가득한, 악의적인 고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어이없는 기소입니다.

(3) 피고인은 이 서면을 통하여, <범죄일람표> 각 항목을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재판부의 공판 준비명령, 즉 ‘위법성 조각사유와 관련하여 피고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무엇인지, 즉 피고인이 어떠한 자료를 참조하고, 어떠한 취재와 조사 등을 실시하였으며, 어떠한 연구과정을 거쳐서 이 사건 서적을 서술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라는 명령에 응할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자료집’은 그 ‘증거설명서’와 함께 따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4) 이하에서는 <범죄일람표> 각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우선, 공소장 본문의 <기초사실>, <범죄사실> 부분을 반박합니다.

2. 공소장의 <기초 사실>에 대하여

(1) 우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검찰이 <기초사실>에 설시한 내용을 보더라도, 이러한 자료가 어떻게 활용되어, 피고인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다는 것인지, 그리고 피고인의 서술부분(즉, <범죄일람표>기재 각 항목의 서술부분)이 범죄일람표 <비고>란의 내용, 즉, 피고인이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① 위안부가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하였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하였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하였다는 것인지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 검찰은 피고인의 <범죄>의 근거로 먼저 <기초사실>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기초사실이 있는데 박유하가 엉뚱한 거짓말을 하였으니 명예훼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검찰이 말하는 <기초사실>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① 위안부가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하였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하였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3) 한편, 검찰은 학계에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도 전혀 조사하지 않고, 고소인측의 왜곡된 의견을 그대로 베꼈을 뿐입니다

(4) 이하 검찰이 언급한 자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가) 고노담화

1) 검찰은 ‘피고인이 고노담화를 부정한 것’처럼 고노담화를 기초자료로 제시합니다.

① 그러나 피고인은 고노담화를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높이 평가했습니다.(책 173면-176면 참조)

② 그리고 피고인은,
“고노담화가 인정한 것은 우리의 이미지-`총칼로 무장한 군인이 강제로 끌어갔다`는 `강제성`은 아니다. 요청은 군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업자들이 한 감언이나 강압이라는 제3의 강제성만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선반도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고 요청을 한 주체가 군이니,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의 간접적 강제성에 대해서도 총체적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이 고노담화다”라고 전제한 후(175면 7줄-12줄), “일본은 조선의 여성들을 일본군의 성욕을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된 것이 ‘조선반도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던’ 결과. 즉 식민지배라는, 정신적 강제체제하의 일이었다고 인정했던 것이다”라고 서술하였습니다.(175면 14줄-17줄)

`또한 “‘조선인 위안부’ 문제는 성차별과 계급차별 이상으로 ‘식민지배’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이었고, 고노담화는 그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응답한 담화였다”고 평가하였던 것입니다.(176면 3줄-6줄)

2) 그럼에도 검찰이 ‘피고인이 고노담화를 부정한 것’처럼 제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첫째, 피고인이 ‘일본의 양심으로 여겨져 온 고노담화(그나마 고노담화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위안부 문제 책임을 부정하는 일부 일본인들이 고노담화를 폐기하라고 요구한 최근 몇 년 전입니다)를 박유하가 부정한 것 같은 인상을 재판부 및 일반인에게 심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을 향해 피고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② 두 번째, (책을 읽었을 경우입니다만) 피고인의 정확한 고노담화해석을 완전히 무시하고, ‘고노담화가 물리적 강제성을 인정한 것’처럼 말해 온 지원단체 등 관계자들의 그간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검찰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20여년의 기존 인식에 갇혀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성이 결여되고 만 결과라 하겠습니다. 참고로, 기소 이후 고노전관방장관이 기소에 반대하는 일본지식인의 성명에 서명한바 있다는 사실도, 피고인의 해석이 정확했다는 사실과 피고인의 책이 검찰이 말하는 식의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합니다.

3) 고소인측이나 검찰은 이런 부분을 무시하고, ‘피고인이 한국을 향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미움을 표했던 우리 안의 책임자(대부분의 업자와 유괴범, 그리고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가족과 이웃)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고 했던 서술 부분’만을 떼어내어, 그 서술 부분에서 ‘피고인이 일본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해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피고인은 ‘이 책 중 일본을 향해 일본의 책임을 서술한 부분’에서 이를 충분히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향해 한국의 문제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 일본에 대한 비판이 없다고 억지를 부린 셈입니다.

(나) 유엔 등 해외에서의 인식

검찰은 ‘피고인의 인식이 해외의 인식에 반하는 것’처럼 말하기 위해, 유엔보고서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증거자료로 고소인측이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유엔 등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좀 더 면밀히 검토하여, ① 이 자료들 대부분이 지원단체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 ② 그러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서문에 ‘세계의 상식에 이의제기를 하는 셈’이라고 썼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역시 피고인이 ‘지원단체 등이 한국에 유리한 부분만 전달한 결과, 그동안 한국에서는 한국의 인식이 전부 맞는 것으로만 인식된 유엔보고서’에 반하는 인상을 만들려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쿠마라스와미 보고서(1996/1998)

검찰은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가 일본에 대해 행한 권고만 쓰고 있고, 이후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권고는 이후 대부분 실현되었습니다. 즉, 정부 차원의 손해배상(1997년 일본 정부가 주도한 아시아여성기금발족, 보상금 지급), 일본 정부의 문서 및 자료 공개(종군위안부 자료 집성 5권으로 출판하고, 인터넷 공개), 서면에 의한 공적인 사죄(기금 전달시 총리의 편지로 표현), 역사적 사실의 교과서 게재 등입니다.

1991년에 문제로서 발생한 위안부문제에 대답해 1997년 시점에서 일본 교과서의 대부분에 위안부 문제가 실렸었습니다. 다시 교과서에서 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사라지거나 수정되기 시작한 것은, 그 기술이 <강제연행>에 치중되어 있어 그러한 기술에 반발한 이들이 반대 운동을 펼치게 된 이후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지원단체와 고소인측이 인식하지 못했거나 말하지 않은 탓에, 여론과 국민이 오랜 세월 사실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사재판부나 검찰은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검토했어야 마땅함에도, 피고인의 반박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입니다.

일본이 이행하지 못한 것은, <범행자 확인 및 처벌>부분입니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죄목을 범행자로 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사태를 우선 정확히 봐야 합니다.

피고인이 시도한 일은 바로 그것이었음에도, 고소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방식만을 옳다고 주장하고,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에 대한 국가권력을 동원한 입막음’에 나섰습니다.

또한 검찰 역시, 고소인측과 똑같이 책을 왜곡하여 발표함으로써 전국민의 비난을 야기하도록 하였습니다.

2) 맥두걸 보고서

맥두걸 보고서는 지원 단체의 법적책임 요구 주장에 손을 들어 준 보고서입니다. 이 맥두걸 보고서는 ‘지원단체가 주장한 <강제연행> 주장’에 기반을 둔 보고입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이 책을 통하여 그런 인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서술하였던 것입니다.(제1부1장 `강제연행과 국민동원 사이`)

3) 미하원의 결의/유럽 등 타국 의회의 결의

2007년에 나온 미하원의 결의는, 시간이 흘러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결과 위안부 문제의 기반이 강제연행이 아니라 인신매매임을 인식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강제낙태 등을 일본군의 소행으로 말하고 강조해 보수의원들까지 설득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여성의 증언에 자극을 받은 유럽이나 캐나다 의회 등도 이 결정을 그대로 이어갔던 것입니다.

이에 피고인은, 이러한 결정이 ‘네덜란드인에 대하여 행해진 일과 조선의 위안부를 대상으로 행해진 일의 차이’를 보지 못해 일어난 일임을 서술한 것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인에 대한 주동자는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도 서술하였습니다. 동시에 미하원의 결의가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을 높이 평가한 사실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는 이러한 사실을 한국 사회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4) 유엔인권이사회

검찰은 이 외에도 유엔인권이사회의 보고서나 권고를 <기초사실>로 언급합니다.

그러나 유엔인권이사회나 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정대협의 전 대표들(정진성 서울대 교수, 신혜수 이화여대 교수)이 각각 이사나 위원으로 활동해 왔다는 사실이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들의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지원단체의 목소리가 이러한 보고서들에 검증 없이 반영된 배경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5) 검찰이 제시하는 <기초사실>은, 검찰이 결국 일부 학자나 지원단체의 기존 인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피고인의 책이 그러한 기존 인식에 대한 재검증을 시도한 책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하여 기소에 이른 것입니다. 새로운 학설이 기존학설과 다르다는 이유로,또한 국가가 기존학설만 믿었다는이유로 새로운 학설을 입막음하는 사태를 개탄하지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언론이 공식적으로 인신매매 사실을 인정하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일입니다.

피고인은 이런 사태가 일어난 원인을 해명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피고인의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갈등의 원인과 배경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 위안부라는 대상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된, 학제간 연구, 융합학문서입니다. 일부 역사학자나 법학자들이 피고인의 책을 폄하하는 것은, 이 책이 자신들의 학문체계나 이론을 넘어선 이론과 체계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시도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본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실을 제대로 알고 그에 기반한 비판과 요구를 하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평안을 바라는 피고인의 마음이 만든 집필인 것입니다.
또한, 잘못된 인식으로 오해가 깊어져 한일관계가 날로 험악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또헌 그러한 사태가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일본전문가/학자로서의 양심과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시킨 일이기도 합니다.

3. 공소장의 <범죄 사실>에 대하여

(1) 검찰이 피고인에게 <범죄>라 하는 것은, <일본군에 애국적 협력자였음을 표현><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 부정)><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임을 표현>했다고 하는 3개 사항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허위사실을 적시>했으니 명예훼손이라는 것입니다.

(2) 검찰의 이러한 기소(고소인측의 고소)는 ‘잘못된 독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라유키상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라는 문장을, 검찰은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임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앞뒤를 보면, 피고인은 가라유키를 매춘부라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가라유키를 <가난해서 팔려간 소녀><국가의 세력확장에 따라 이동/당한 여성들><일본인 여성>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매춘이 아니라도 그런 식으로 <가난해서 이동당한 일본인여성들>은 부지기수였으며, 조선인 위안부란 식민지화로 인해 그러한 틀 안에 들어가게 된 존재라는 것이, 피고인이 `가라유키상의 후예`라는 말에 담은 뜻입니다. 그녀들은 매춘이 아니고도 여러 직종에 있었으며, 매춘업은 어디까지나 그 일부일 뿐이므로 `가라유키=매춘`이 되지도 않습니다.

피고인은 <가라유키의 본질은 매춘>이라고 쓰지 않았고, 따라서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도 쓰지 않았습니다. `가라유키의 후예`라는 표현으로 박유하가 무엇보다 강조하고자 한 것은 <일본인 위안부>의 존재입니다. 일본군의 의뢰가 먼저 있었고 실제로 동원대상이 되었던 건 일본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런 한 위안부 제도에서 국가가 자국민을 <강제연행>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있을 수 없었고, 식민지화되어 <일본제국>의 일부가 된 식민지에서도, <연행>이란 <공식적으로> 지시될 수 는 없는 일이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검찰의 이 지적은 지극히 자의적인 오독일 뿐 아니라 악의적 허위라 하겠습니다.

(3) 그럼에도 조선인 위안부에게 <물리적 강제>를 가한 것은 군대이기 이전에 업자들이며, 일본군은 위안부들을 차별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폭행을 금지했다는 점, 업자들에게 계약서를 확인해 본인 혹은 부모의 의사를 확인하도록 했다는 점 등을 따로 상세하게 밝히겠습니다. 이는 기존 연구자들이 지적하지 않았음은 물론, <제국의 위안부>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자료에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에 기반해 피고인이 이 책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시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특히 후반에는 <애국을 종용>하는 시대를 살았고, 따라서 <강제>하지 않고도 모집이 가능했으며 여성들을 속이거나 강제한 주체는 주로 업자였음을 설명할 것입니다.

(4) 피고인이 <애국>을 말한 것은, ‘위안부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당시 식민지의 정황을 아는 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식민지에 대해서도 일본이 애국을 강요하는 과정이 있었고, <일선동조론>이니 <내선일체>결혼 등은 그런 시대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 시대의 한 가운데에 위안부도 놓여 있었음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일본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여성들이 그런 슬픈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한 일본에 대해 반성과 책임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위안소와 공창제와의 관계 등에 대한 언급은 다른 학자들, 특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적지 않습니다. 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

피고인의 인식은 주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집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고, 그 골자는 이미 10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라는 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문화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도 발간 직후에 여러 매체들이 진지한 관심을 갖고 인터뷰와 서평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검찰이 말하는 것 같은 책이었다면 고발이전에 언론에 의해 비난받았을 것입니다.

(5) 이하 각항목에 관해 앞뒤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피고인의 책은, 검찰이 말하는 것과 달리,

(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는커녕 반복적으로 성노예적 측면이 있음을 기술했다는 점, 따라서 <위안부의 본질은 매춘>이라고 쓰기는커녕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향해 비판한 책이라는 점,

(나) 원고로 기명된 위안부할머니들이 직접 수류탄을 나르거나 일본군의 빨래를 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당시의 위안소가 <애국><고향><평화>라는 이름을 달았던 데서 위안부제도가 <애국>의 틀에 편입된 제도였다는 점, 당사자들이 그러한 구도를 알았거나 믿었는지 여부를 떠나, 위안부에게 요구된 역할이 그런 것이었다는 것이며, 피고인이 그런 정황을 굳이 설명한 것은,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정책과 사고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희생구도에 들어가기 쉽게 만든 국가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 따라서 일본에 대한 책임을 기존의 한국의 주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묻기 위한 것이라는 점, 결론적으로 원고나 검찰이 말하는 것처럼 <위안부가 일본에 애국적 협력자>라고 비난한 것일 수 없다는 점,

(다) 결국 피고인이 기존 <강제성>인식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강제성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눈에 띄는 강제성’ 이상으로 ‘교묘한 강제성—<구조적 강제성>’이라고 이미 피고인이 10년 전에 자신의 저서에서도 기술한 개념을 더욱 명확히 강조해 일본의 책임을 정확히 물으려 한 책이라는 점

등을 밝힐 것입니다.

(6) 피고인의 책은 기존 연구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일본에 책임을 물은 책이며, 그를 위해 한국/일본 사회에 이 문제에 관한 공통인식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임을 밝힐 것입니다.

4.

전국민의 지지와 후원을 받아온 지원단체가 한 학자의 책을 고발한다는,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면, 검찰은 중립적 입장에 서서 고소인측 주장도 충분히 재검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아무런 재검증 없이 기존 인식에 얽매여 기소에 나섰을 뿐 아니라, 피고인이 `자발적 매춘부`라고 썼다고 보도 자료에 써서 배포한 일은,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피고인을 전국민의 지탄을 받도록 한 일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검찰이 국민의 명예와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금 도서 지정 관련 보도

성남도서관에서 나의 책들을 19금 도서로 지정한 배경을 취재해 준 기자분이 있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우연히도 오늘, 서울의 한 남자 고등학생 둘이 <제국의 위안부>가 “방과후수업”의 과제도서였다면서 남은 질문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고등학교 1학년. 책을 읽고 찾아온 학생중에는 최연소다.

책을 너무 좋아한다는 두 학생한테 성남시 조치 얘기를 했더니 학생들도 기막혀 했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을 훌쩍 앞서간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6090107263917300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654784694765

 

渦中日記 2016/5/13

오랫만에 다시 “渦中日記”를 쓰기로 한다.

고발이후 한동안, 재판관련 그리고 책관련 일을 이 제목으로 썼었다. 그러다가, 기소 이후부터 이 제목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渦中日記”라는 제목조차 사치스럽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1월에 민사패소하고 2월에 가압류를 당하면서,그 외에도 한일합의 이후 부쩍 심해진 공격을 하루가 멀다고 받으면서, 약간의 무기력증이 오기도 했었다. 어차피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고 여론을 살피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니 비난글들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월말에 한겨레가 비판글을 올렸기에 반론을 썼지만, 요즘처럼 재판준비에 쫓기고 있는 시기에 시사인,오마이뉴스, 그리고 녹색평론,..이런 식으로 연달아 나오면 반론을 쓰는 일도 부담스럽다.

정말 써야 하는 책을 쓸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책/재판관련 해서 “일어난” 일만 간단히 쓰기로 해 본다. 渦中日記를 쓰는 날이 많지 않기를.

————
아침에 박경신교수의 SNS발언에 항의포스팅. 이런 작업은 늘 우울하다. 비판하는 이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짧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하루종일, 법원에 제출할 자료준비를 위한 작업.책에 사용한 자료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굳이 밝혀야 하는 작업의 무의미성에 견뎌야 했던 시간. 명백히 소모적인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해보려 하지만, 그 노력자체에도 가끔은 지친다.

1940년 전후의 수양딸제도관련기사와 인사소개업자들의 호적위조관련기사가, 나눔의집 할머니들 중에 수양딸로 갔던 분들이 있었던 걸 생각나게 만들었다. 되돌아 온 딸을 다시 내다 판 아버지 때문에,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소녀들. 그러나, 그런 주변인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고 했던 나의 제안은, 여전히 공중에서 부유중이다.

“책임”에 대해 생각하려면 자아가 강해야 한다. 물론 그런 “시대”에 대한 연민도 필요하다.

변호사사무실에서 돌아오면서, 많이 졸렸다. 운전하면서 졸렸던 건 별로 없었던 일이다.
피로가 누적된 탓이거나, 노화현상이거나.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66352310058346

渦中日記 2016/1/15

집에 돌아온 지 36시간 경과.
대부분을 “無為”의 시간으로 보냈다.

고발직후, 가처분판결직후, 기소, 한일합의, 그리고 민사재판 판결. 다섯번째 반복된 “집단비난”의 결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한일합의 이후,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드러나게 박대통령지지자들인 게 눈에 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를 둘러싼 사태를 나는 어느정도 분석할 수 있고(할머니,지원단체, 대중,학자,언론,일본..), 어쩌면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일이 쓰기에는 의욕과 힘이 충분치 않다.
언젠가, 일본도 잘 아는 누군가가, 그 일을 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내가 페이스북등이나 그 밖의 글/인터뷰를 통해 해 온 얘기는 내가 알고 경험한 일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자발적 매춘부”로 쓴 것은 아니라는 걸 독자들이 알 수 있게 쓴 기사가 눈에 띄었다. 2013년 1월, 꼭 이맘때 평화로웠던 시기의 평화로운 대화의 순간을 올려 준 경향신문 기자의 마음이 고맙다.
어쩌면 모든 것이 “지적태만”에서 비롯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대신 넘쳐나는 “정서과잉”과 “욕망”들이 만든 일.

80년대엔 국가폭력이 국민을 옥죄었다.
“민주”화 된 2010년대엔, “국가화된 국민”이 “개인”을 옥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책에서 “국가에 동원되는 개인”의 아픔에 대해서 썼었다. 그런데 나 역시 그 한사람이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아이러니”들을 견디면서,
풀기엔 너무도 많은 층위의 옥죄는 구조들, 얼키고 설켜 이미 보이지 않는 “악의”들을 풀어야 하는 과제가 내 앞에 놓여있다.
2016년도 힘든 한해가 될 것 같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601131905341&code=94010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67987926561452

渦中日記 2015/12/22

원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ce nationalism)라는
개념이 있다. 몸은 바깥에 있지만,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민족주의적 감성에 빠지기 쉽다는 개념이다.

뉴욕의 한국인 학부모들이 뉴욕타임즈 기사에 자극을 받은 것 같다. 내 책의 반은 일본비판이라는 걸 이 기사가 썼었는지 잊어 버렸다. 2007년에 보스톤의 학부모들은 반전(反戦)수기인 “요코이야기”를 결국 출판사가 자체회수하도록 만든 적이 있다.

“제국의 위안부”는 전자책도 있다. 우선은 읽고 나서 행동에 나서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http://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51222_0010492092&cID=1010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51256344901277

渦中日記 2015/12/9

<제국의 위안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오늘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답변–“토론을 요청하기 전에 고소를 취하하도록 노력하는 게 수순일 것”이라고 한 얘기에는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했다. 정대협 전 회장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도, 그들에겐 그런 노력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들이 “할머니의 아픔”에는 더할 수 없이 민감하면서, 같은 학자인 나의 정황에는 둔감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새롭게, 할머니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어제 퇴근길에 어떤 할머니가 전화하셨기에, 대화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할머니를 아프게 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할머니는 “서울대교수가 다섯 명이나 당신 책이 나쁜 책이라고 했다더라.”는, 고발직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누가시켰다고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강조하는 이들이 가장 “피해자를 배제”하고 있는 구조가 점점 더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모순적 구조.

교수신문이 그나마 사태를 제대로 보려고 해서 다행스럽다. 언론때문에 피해 본 것도 많지만, 부정적인 부분만을 보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보는 편이 인생에는 도움이 된다.

일본의 한 언론인이 “이 사태에 대해서 해설해야 하는데 나쁘게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나쁜 부분만 보는 것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려는 노력을 같이 하는 것만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길일테니까요.”

나역시 아직은 그런 심경을 버리지 않고 있고, 생각해보면 그게 이제까지의 나의 방식이었다.

http://m.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84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3408772352701

渦中日記 2015/12/7-2

기소이후, 한국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다른 곳의 의뢰도 받았고 일부는 이미 인터뷰를 했지만 동아일보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호의적인 내용이지만 “매듭지어야”한다던가 “한일 양심적 지식인들이”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책은 해결을 위해 힌트가 되었으면 해서 쓴 책이지만 해결에만 방점이 찍힌 책은 아니다.

또 위안부문제는 해결을 두고 늘 누군가를 배제해 온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틀 자체가 수정되어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51207/75216867/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962239164021

渦中日記 2015/12/5

기자회견이 끝나고 사흘. 기소 이후 이주일 여, 내내 경황이 없어 답하지 못했던 전화, 문자, 메일, 메시지등에 답하기 시작했다.
이 주말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원고도 써야 한다.

경향신문 기자가 이번사태에 대해 정리한 기사를 써 주었다. 생각해보면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전면기사로 서평을 써주었던 매체다. 그럼에도 얼마전엔 나를 “친일교수”로 모는 기사를 쓰기도 했던.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의 매체가 결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책을 간행한 이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이 내 이름과 함께 돌아 다닌다. 어떤 이는 “설사 직접 쓰지 않았어도 그렇다고 알 수 있는 내용을 쓰지 않았느냐”고 한다.
위안부문제 해결은 어쩌면, 뿌리깊은 매춘차별의식에서 벗어날 때에야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든 주변인이든.

“논박”이란 때로 필요하지만, 때로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논지도 아니고, 지식도 아닐 수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건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태도, 그리고 타자와 마주하는 자세일 뿐이다.

http://h2.khan.co.kr/20151203163105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018259258419

渦中日記 10/31 –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답한다 1

지난 봄에 <역사문제연구>에 게재되었던 젊은 역사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답한 글입니다. 긴 글이라 조금씩 나누어 올려 둘 생각입니다. 이 짧은 연재가 끝나면, 한꺼번에 읽을 수 있도록 노트에 링크를 만들어 두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재승 교수에 대한 반론도 올릴 생각입니다.

지난번에 올린 재일교포 정영환교수에 대한 반론도 그렇지만, 이런 모든 논쟁들이 고발 이전에 이루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올해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군요.

———-
<1>
1. 비판 방식에 대해

1) 허위 적시

『역사문제연구』33호에 집담회 「젊은 역사학자들, 『제국의 위안부』를 말하다」(
『역사문제연구』33호, 2015.)가 게재되었다. 이들의 비판 역시 재일교포학자 정영환과 마찬가지로 오독과 곡해 그리고 적의로 가득한 내용이었던 것과,( 정영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 체제의 재심판」, <역사비평>111, 2015.) 한 학자의 고민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거친 말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로 학술지에 게재된 데 대해 먼저 깊은 유감을 표한다.
비판은 전체 문맥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각 기술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내가 책에서 비판했던 정대협에 대해서는 “맥락까지”(앞의 집담회, 561쪽. 이하 쪽수만 표시) 살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의 책에 대해서는 맥락은커녕 쓰여 있는 내용조차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들의 비판이 논지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이 아니라 인상비평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 연구자가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겸허해야 했다. 그러한 성급함과 은폐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정영환에 대한 반론도 참조해 주기 바란다.( 박유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체제」, <역사비평>112, 2015.)

이들의 비판이 얼마나 성급한 오독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먼저 제시해 둔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2부 3장, 즉 위안부의 재현의 문제를 다룬 부분에서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의 문제와, 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해 간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소녀 이야기』의 경우 할머니의 증언이 애니메이션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되었는지를 지적한 것이니 이 부분이 할머니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또 후자에 관해서도, 나는 “그런 변화는 의식적인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듣는 이들의 기대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크다”라고 썼다. 이어서 “그런 의미에서는 위안부의 증언에 차이가 난다고 해서 위안부들만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또 그런 증언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이라고 해야 한다. (…) 피해자임을 확인하기 위한 민족 담론은 표면적인 피해 인식 외의 모든 기억을 말살시키려 한다”( 박유하,『제국의 위안부』, 뿌리와이파리, 2015, 133-134쪽.)라고 썼다.

그렇게, 이 부분의 비판의 대상이 우리 자신이 피해자임을 확인하기 위한 민족 담론임을 분명히 하면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영원히 안 볼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우리 안의 욕구에 대한 언급에 이어 이렇게 썼다. “그러나 70세가 되어가도록 그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할 수 없다면, 그건 과거의 상처가 깊어서라기보다 상처를 직시하고 넘어서는 용기가 부족해서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혹은 우리가 아직,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보듬는 자신에 대한 사랑 대신 타자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더 큰 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가.”(제국의 위안부, 뿌리와이파리, 2015, 134)라고.

여기서 문제 삼고 있는 대상이 위안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자 해방 후 한국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젊은 학자들은 “위안부경험을 했던 사람들한테 이런 반성과 비판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는데도 저자는 이 비판을 그녀들에게 집중하죠. 예를 들어 <70세가 되어가도록 과거의,(중략)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는 표현처럼요. 용기의 부족, 미성숙 등으로 몰아세우고 있어요.”(550)라면서 비난한다.
사실 이 부분은 『제국의 위안부』를 고발한 이들이 첫 번째 고발장에서 적시한 109곳 중의 하나였다. 지원단체는 이후 내가 반박문을 제출하자 지적 내용을 반으로 줄이고 고발 취지를 바꾸기까지 했는데, 이 부분은 그때 사라진 지적부분이다. 젊은 학자들 중에 소송문서작성에 직접 관여한 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기서 문제 삼은 내용 역시 이들의 주장과 같았다.
해방 후 70년이라는 시기에 할머니가 70세라면, 해방 무렵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히 위안부 체험을 했을 리도 없다. 이 집담회는 이런 식의 웃지 못할 오독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들은 『제국의 위안부』 33쪽에 나오는 웃고 있는 이미지의 사용을 문제 삼으며 사진 위치가 의도적(554)인 것이 명백하다면서 비겁하다는 식의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데, 33쪽은 물론 32쪽에도 34쪽에도, 이들이 지적한, 위안부의 숫자가 20만명보다 적고 상대한 숫자도 적고 연애도 하는 존재였다는 대목은 이 사진이 실린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미지 사용 위치는 출판사가 정한다. 명백히, 나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로 몰아가기 위한 허위이자 근거 없는 비방이다. 이들의 비판은 유감스럽게도 정영환에 못지않게 악의적이고 그 왜곡 수준이 범죄적이다. 또한 『소녀 이야기』에 대한 나의 지적을 두고, 내가 없는 얘기를 한 것처럼 말하면서 비웃지만,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는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근거 없는 비판은 하지 않는다. 또 나는 『제국의 위안부』의 비판에 대한 반박에 “표현의 자유”(543) “학문의 자유”(543, 572, 575)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해야 하는 문제적인 기술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이들은 하지도 않은 행위를 한 것처럼 말하면서 허위에 입각한 비방에 치중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2584924435086

渦中日記 2015/10/22

그저께저녁, 감기로 골골거리고 있는데 와세다대학에서 연락이 왔었다. 와세다에서 주관하는 “이시바시탄잔 기념 저널리즘 대상”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

얼마전에 쓴 것처럼 지난번 마이니치신문사의 수상소식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이번 소식은 순수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소감을 써 보내라기에 그 이유를 썼다.

실은 마이니치의 경우 수상식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밝고 화려한 장소에 나가 웃는 얼굴을 할 기분은 아직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지인의 의견에 힘을 얻었고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결코 위안부할머니를 모욕하지 않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점 부끄럼이 없다. 그래서 수상에 대해서도 당당해지기로 했다. 할머니들도 언젠가는 오해를 풀어 주시리라 믿는다. 수상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일본인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위안부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면 되었지 결코 방해가 되는 일은 아니라는 확신에도 변함이 없다.

감기가 나으면 그동안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셨던 페친여러분들과의 만남도 가져야겠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여러분들께 감사 전하면서 보고드립니다.

<소감>

“대학원에서 배웠던 와세다대학이 주관하는, 그것도 이시바시탄잔을 기념하는 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시바시탄잔은, 반전, 반군대, 식민지 포기, 소일본 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국가/제국의 욕망에 개인이 어떤식으로 동원되고 착취당하는지를 생각해 본 책이니, 의도하지 않았으나 이시바시의 사상과 접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계를 넘어, 이시바시와 같은 사상을 계승하고 공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작금의 동아시아가 불안정한 만큼 간절히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집필에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大学院で学んだ早稲田大学からの、しかも石橋湛山の名を冠する賞を受賞することになってとても嬉しく思います。石橋湛山は、反戦、反軍、植民地放棄、小日本主義を目指しました。「帝国の慰安婦」は、国家/帝国の欲望に個人がどのように動員され、搾取されるのかを考えてみた本ですから、石橋湛山の思想に図らずも接し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境界を越えて、石橋のような思想を受け継ぎ共有することが本当に必要と、現在の東アジアが不安定なだけに切に思います。そうした賞をいただいたことは、今後の仕事の上でも大きな励みになり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17801724913406

渦中日記 2015/10/22-2

하루에 渦中日記를 두 번 쓴 적은 거의 없다.

이 제목으로 쓰는 내용은 <제국의 위안부>, 혹은 재판에 관한 얘기들이다. 낮에 <제국의 위안부>가 높이 평가받았단 얘기를 썼는데 저녁에는 반대되는 상황을 써야 하니 아이러니다.

오늘, 그동안 진행해 왔던 “조정”이 중단되었다. 따라서 이제, 형사고발에 관한 결정은 검사의 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제시된 원고측 요구는,
1.사과,
2.삭제요구부분을 000표시한 한국어삭제판을 다른 형태로 낼 것(000표시가 삭제된 내용을 “간접적으로”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3. 제3국에서 내는 책도 한국에서 삭제한 부분을 삭제할 것,
이 세가지였다. 그러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2번도 일종의 검열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다. 대신 3번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일본어판은 번역도 아니고 독자적으로 낸 책이어서 권리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요구를 내가 수용해 일본측 출판사에 요구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받은 연락은, 원고측은 일본어판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조정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2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모든 게 아마도 나눔의집 소장의 생각일 것이다. 내가 얼마전에 통화했던 할머니는, 자신이 형사고발인 명단에 오른 줄도 모르고 계셨다.

두통/근육통에서 해방되었나 했더니 오늘은 기침이 심하다. 문득 겁먹으면 기침을 심하게 하던 영화속 러시아의 공주가 생각난다. 잉그리드 버드만이었을 것이다.
겁을 먹은 건 아니지만 긴장되기는 한다. 아무튼 이 달 안에 형사고발에 관한 결정이 날 것 같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17953421564903

渦中日記 2015/9/23

<머니투데이>의 김사무엘기자와 오래 얘기했는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음성입력을 했더니 핸드폰이 뭐니(!)투데이라고 받아적기에 잠깐 웃었다.)
그래서 오늘은 <머니투데이>의 다른관계자와 통화하고 “동지적관계”라는 단어가 사용된 전후맥락을 참고해 달라고 했다.

이하는 책 몇쪽을 사진찍어 보내면서 덧붙인 글.
——–

“동지적 관계”라는 개념이 사용된 부분을 보냅니다.
보시다시피 우선은 다른 나라의 위안부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다는 점, 일종의 국민동원이었다는 점, 그리고 중국등, “적”이 아닌 “동일한 일본인”으로서 나가게 된 건 우리가 식민지 지배를 당했기 때문이고 그러나 그 안에 차별과 폭행이 존재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다시 말해 식민지배의 본질은 눈에 띄는 폭력보다 눈에 띄지 않는 통치기술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입니다. 군인과의 의외의 관계도 그런 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그것을 말하는 이유도, 일본에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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渦中日記 2015/7/29

정우성대표님이 올려 주신 마이니치 신문 칼럼을 번역해 보았다.
군인과 위안부관계를 강조하는 부분등 한두군데 불편한 곳이 있지만( 그리고 검찰에선 “사정을 들은”것이 아니다. “범죄리스트 53개항목”에 대해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제국”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만큼이나 제대로 읽어내고 또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준 이는 많지 않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 두자면 책의 인세는 변호사비용 착수금도 되지 않는다. 물론 세금을 내고 나면 한참 미치지 못할 것이다. 조정이 성립하거나 이길 경우엔 성공보수를, 질 경우엔 2억7천만원을 또 지불해야 한다. 2심,3심 갈 지도 모른다.
아무튼 착잡한 건, 일부나마, 일본에서 책 판 돈으로 한국의 재판비용을 대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팔리는 책은 앞으로 공적비용으로 쓰기로 한지라 더욱 그렇다.

나는 위안부할머니와 한일갈등해소를 위해 책을 썼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나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건 결국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나를 비난하는 이들이 곧잘 하는 소리인 “일본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가 아니라 별로 듣고 싶지 않았을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로. 그리고 그 상황이야말로 재판을 일으키고 지지하는 이들이 원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지독한 아이러니를 알까.

아무튼, 기존 운동이나 연구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은 이 편집위원처럼 허심탄회하게 읽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주었다는 걸 이 9개월동안 느껴왔다. 물론 소수지만 관계자들 중에도 감동했다고 말해 준 이들이 있어 고마웠다.

야마다위원은 아베수상의 70년 담화를 위한 지식인모임의 멤버라고 한다. 영향이 있을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겠다.

——–

<제국의위안부> 다시 읽기 야마다 다카오

박유하 세종대 일문과교수가 고군분투를 이어가는 중이다.<일본군의 위안부-성노예>설을 부정한 노작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 한국에서 판매금지처분을 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본 칼럼에서 전에도 한번 이 책에 대해 언급했는데, 제2차대전종료후 70년, 한일국교정상화 50년이 되는 지금이야말로 <제국의 전쟁>을 분석한 이 저서의 깊은 통찰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키워드는 <위안부>지만,그 이상으로 <제국>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나라가 강대해지면서 다른 여라나라들을 합쳐 더 큰 나라가 된 것>( 신명해국어사전)이다. 제국주의란 <다른 소국의 권익/존립을 희생시키더라도, 자국의 영토/권익의 확대나 신장을 꾀하려는 침력적경향>(앞의 사전)이다

제국의 역사는 길지만, 근대사의 제국은 19세기의 유럽열강이다. 일본은 열강의 아시아 진출에 대항해서 제국이 되었다. 제국은 새로운 영토나 자원을 찾아 먼나라로 군인이나 상인을 보냈다. 그 지점에 위안부의 수요가 있었다. 가난한 집 딸들이 돈으로 팔려갔고 알선업자가 있었다. 인권같은 건 돌아보지 않았던 시대였다.
위안부는 그런 경제사회구조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이해는 과격하기는커녕, 국제사회가 본다 해도 이견은 적을 것이다.

저자는 위안부 증언집이나 일본의 전쟁문학을 꼼꼼하게 읽고 위안부와 일본군사이에는 사랑도 우정도 있었다고 썼다. 그것이 본질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노예적인 지배/복종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논했다.
이 책은 한국어판이 4000부, 일본어판이 15000부 팔렸다.

작년 6월, 전 위안부 9인이 한사람당 3000만원의 손해배상에 더해 출판/광고를 금지하는 가처분을 청구. 금년 2월에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도 광고도 할 수 없다는 가처분이 나왔다.
박교수는 지난 달말에, 복자를 많이 사용한 삭제판을 1000부 간행하는한편, 본소 준비에 들어갔다.
그 동안, 도합 5회 검찰이 사정을 들었고 명예훼손죄에 의한 기소는 불가피한 정세인 듯 하다.
제소 배경에는 <일본은 천황제와 사무라이전통에 근거한 툭수한 군국주의국가다>라고 하는 위안부지원단체의 생각이 존재한다.

박유하는 일본의 선의를 논증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과거를 제국주의 세계사를 기반으로 분석하려 하고 있다.
자본과 군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상품화>를 초래한다. 지금도 전세계군사기지 주변에 <위안부>가 보인다. 박교수의 문제의식은 그 지점에 있다.

박교수는이렇게 썼다.

< 위안부지원운동은 비판대상을 일본이라는 고유명으로 한정시킨 결과,위안부문제를 “남성과 국가와 제국”의 보편적 문제로 취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이나 미국을 비롯한 일본이외의 나라도 이 문제에서 무죄일 수 없다는 점을 오래도록 못 보게 만든 것도 그 결과일 것이다..>

한일의 불화는 양국에 고유한 의심과 미성숙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역사가 만든 것이다. 일찌기 서구에 추종하며 강자로서 아시아를 지배한 일본은 타자를 지배하는 서양기원의 사상을 넘어 국제사회를 평화공존으로 이끄는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이해를 얻어 가며 도전하고 싶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65405096819736

渦中日記 2015/7/28

우연히도, 어제와 오늘,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에서 나에 대해 언급한 기사가 났다. 어제 칼럼은 정우성대표님이 태그해 주셨으니 오늘기사만 우선 번역해서 올려 둔다.
마이니치신문은 얼마전부터 90년대에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실시했던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심층취재한 기사를 연재중이다. 그 공과(功罪)를 마주하려는 기사인데, 이렇게 말하는 기금에 대해 사죄의식이 없는 “꼼수”였다고 말한 것이 지원단체들이었다. 나는 책에서 그 부분을 비판했는데, 할머니들을 비판한 것처럼 왜곡유포된 것이 고발이라는 사태였다.

이달말로 닥친 형사고발조정과 다음달에 있는 민사재판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 변호사사무실로 향하는 오후.
——

못다한 식민지책임

<전후일본의 반전사상이 국민들에게 뿌리내린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식민지지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오지 않았던 거 아닐까요>

금년 6월, 동경의 호세이대학에서 열린 일본사회문학회 30주년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한국/세종대 박유하교수는 그렇게 물었다.

부부이야기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 나츠메소세키 <명암>에는 가난 때문에 조선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근대소설을 바탕으로 박교수는 제국이 국민의 이동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 이주가 전쟁을 염두에 둔 국책이었다는 점,일본에서의 기민(棄民) 들이 식민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적했다.

그리고 위안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요한 건 누구나가 기피하는 일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강제인지 매춘인지 하는 논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하고 말했다.
그의 전문인 일본근대문학에 그려진 식민지의문제는, 역사문제논의에도 반영되었다.

2006년,아시아여성기금이 연 국제심포지엄에 패널로 참석했던 박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 발언했었다.
금년 5월에 서울에서 식민지에 대한 관심에 대해 다시 물었을 때도 <개인적으로 차별당한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인여성이라는 사실은 관계가 있습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소세키연구가 진보지식인으로 불리는 것에도 의문을 가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저술한 것이 화제작 <제국의 위안부>이다. 교토의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금년 2월에 열린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워크샵에서는 왜 썼느지,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햇다.
<위안부가 목소리를 낸 1991년, 누구나가 식민지지배문제로 이해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 위안부문제논의에서 제국의 문제가 빠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본남성의 문제로만 축소되었습니다 >

<조선의 여성은 “애국”을 당했고 일본인이 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조선인 위안부상을 통해 식민지지배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 겁니다. 일본이외의 다른 제국국가의 문제도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서구일본학자들에 의한 금년 5월성명에는 <제국에 관련된 인종차별, 식민지주의와 전쟁,그리고 그것이 (중략)시민들에게 끼친 고통과 충분히 마주해 온 나라는 아직 어디도 없습니다> 라는 말이 이오진다. 그리고 일본정부에 대해 <과거의 식민지배와 전쟁당시 침략문제와 마주하라>고 요구했다.

박교수의 화해방안은 책임을 무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한국판을 둘러싼 형사/민사쟁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책임은 과거의 제국 전체를 향한 난제가 아닐까.(기시도시미츠. 岸俊光)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6491844686840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6/25

삭제판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다.
가처분 결정이 난 지 4개월 만의 일이다.

참담한 심경이지만, 어쩌면 그저,
전염병, 가뭄, 자살, 빈곤사, 부패, 유명작가의 표절…등등으로 혼란스러운, “표류하는 대한민국”의 또하나의 얼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국가의 얼굴”로 삿대질했던 목소리들의 결과물.

이 책의 수익도 평화를 만드는 담론의 생산과 확산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불행한 책이지만, 내용을 이해하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읽어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43896005637312

渦中日記 2015/6/22

작년 7월, <제국의 위안부>를 고발한 나눔의 집 관계자들은 내가 10년전에 낸 책까지 공격을 시작했고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신문이 곧바로 “일본우익을 대변한 책”이라고 보도했었다.

그 시점에선 전자책밖에 없었는데 그저께 심포지엄날짜에 맞춰 종이책이 다시 나왔다. 표지는 최규승 시인의 사진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여러 페이스북 친구들이 이 책을 함께 만들어 주셨다.

전자책에는 없는 “독도보론”과 “해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출판사와 함께, 이 책의 수익은 모두, 동아시아 평화 운동에 쓰기로 했으니, 많이많이 사 주시고 읽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분들이 “일본우익을 대변”하는 일에 가담했는지 확인해 봐 주시기를.
함께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예전책보다 더 아름답고 더 지적인 책이 되었습니다. ㅎ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41455249214721

渦中日記 2015/5/27-1

오늘,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명예훼손소송이란 기본적으로 형사고발이라는 걸, 나의 일이 되고서야 처음 알았다.
그런데 곧 1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기소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민사재판이 이제야 시작된다는 것도 그나마 관계자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페친 정승원샘이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글을 다시 써주고 계셔서 링크해 둔다.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득 가슴에 품고, 오늘은 처음으로 법원에 나갈 예정이다.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0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4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67&thread=21r04

http://newsmin.co.kr/detail.php?number=4949&thread=21r0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448301015416

渦中日記 2015/4/17

사람이나 언론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앞으로는 진보든 보수든, 나의 논지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이들이면 기꺼이 소통할 생각이다. 나를 상처준 이들은 이른바 진보계열에 속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보수 이상으로 보수적이었다. 오로지 기존주장이나 입장을 “지키려”고만 했다는 점에서.

물론 그들 안에도 지혜롭고 유연한 이들은 당연히 있었고, 그동안 견뎌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들 덕이다.

나에 대한 비판/지지여부를 나누는 건, 좌우이념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정보량과 사고의 유연성인 듯 하다. 그럼에도 가장 극심한 폭력이 좌우 양극단에서 나왔다는 건 지적 보수의 정서적 빈곤을 보여준 것일 터. 결정적인 순간에 폭력을 만드는 건 언제든, 이념도 이상도 아닌, 인간성이다.

그런 생각으로 응했던 첫번째 글이 나왔다. 일본어판도 영어판도 있는데 정작 한국어판은 못 만들었던 <제국의 위안부>요약이다. 나는 기지를 반대하기 때문에 보수적 입장에 있는 이들도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이 좌우 상관없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공유가능한 부분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기 때문에.

(제목은 내가 붙이지 않았다.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38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01385753221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