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7/11/2

“하지만 박교수의 저작은, 식민지의 여성을 전쟁에 동원한 “제국”이라는 시스템에 착목한 학술연구다.
박교수는 “많은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강제연행당했다”는 획일적인 이미지를 부정했다. 동시에 위안부를 필요로 한 제국주의 일본도 엄중한 시선으로 대한다.”
(2017/10/30, 마이니치. 毎日新聞 사설)
“박교수의 저서는, 위안부에 관한 한국에서의 단면적인 관점에 이의를 제기했다. 다른 한편으로 위안부의 가혹한 처지를 만들어낸 “대일본제국”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2017/10/31, 요미우리. 讀賣新聞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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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기소, 패소. 이런 일들로 주목 받을 때마다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우익의 주장과 같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물론 승소했을때조차.
3년이상 해명하고 설명해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지만 변하지 않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내가 알기로 보수성향인 요미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제국의 위안부> 서평이나 인터뷰를 실은 적이 없다. 우파신문인 산케이도 마찬가지. 그건, 이들 신문에게 나의 책이 불편했다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싣는다 해서 거절할 생각은 없다. 나는 오히려 그 독자들 중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에게 다른 생각을 전하고 싶었던 거니까.
이들의 언급에서 “획일적인 이미지를 부정” 했다는 것에만 주목할 사람도 있겠지만, “일본의 책임을 추궁”한 부분에 언급한다는 건, 내가 던진 공을 받아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미우리의 이런 언급은 내게는 기쁜 일이다. 물론 비판자들은 “요미우리가 긍정적으로 언급한 건 <제국의 위안부>가 우파의 입맛에 맞는 얘길 썼기 때문이다!”라고 다시 외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