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총재가 한국을 “집단자살사회”라고 말했다는 것

IMF총재가 한국을 “집단자살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의미가 다소 애매하고 어감도 좋지 않지만, 이화여대생들과의 대화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나온 소회인 듯 하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가 문제시 되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중국교포를 비롯한 이주민들이 들어오니 인구문제는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얼마전 어떤 기사를 보니 유입되는 이주민조차 줄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자국민에게도 그렇지만 이주민들에겐 그 이상으로 따뜻한 나라가 아니니. 더구나 가난한 이주민들을 그저 자국의 “경제이익”이나 “재생산(출산)” 목적을 충족시켜줄 도구로만 대하고 있으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재생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타박하지만, 그 문제 역시 입양으로 해결될 수 있다. 사실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바뀐 근대가 둥그런 앉은뱅이 식탁에서 4인용 식탁으로 바뀐 시대였다면, 그리고 그 시대가 여전히 “혈연”을 중심으로 한 親가족주의시대였다면, 홀로 사는 가구가 가구전체의 4분의1을 넘었다는 이시대야말로 “함께 혹은 홀로” 의 식탁의 면면이 바뀌는 게 당연한 시대가 아닐까. 물론 혈연중심 대가족제도로의 회귀도 포함한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동네살리기/지역살리기의 천편일률적인 발상과 정책에 대한 이의제기다. 대부분이 그저 역사나 자연에 의존하거나( 그러느라 남의 역사를 뺏어오고 보잘것 없는 자연을 과대포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 관광지로서의 일회성 만족을 충족시키는데에 그친다) 관공서/기업유치와 거대건물로 눈길을 사로잡아 보려 하지만, 오히려 “오늘”과 “일상”과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봤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마을, 장애인이 살기 좋은 마을, 노인이 살기좋은 마을, 취직못한 젊은이들의 자활을 돕는 마을, 개나 고양이가 살기 좋은 마을..
이런 것들을 만들다 보면 자치단체도 집중할 수 있으니 마음다해 꾸려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특징이 자신에게 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러다보면 아이와 노인과 동물을 위한 삶에서 새로운 철학과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대상과 자신의 쾌적한 삶을 위한 상품아이디어/기업도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다른 지역과 세계가 벤치마킹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모든 지역이 그만그만하게 모두에게 쾌적한 (최소한 가혹하지 않은) 공간으로의 탈바꿈을 할 수 있지 않을까…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발상은 거꾸로여서(그나마 모두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목하는 곳을 만들려는 현시욕이 앞선 탓에) 결국 모두에게 각박하고 결국 모두가 고독한 사회/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살고 싶지 않은 사회로 느끼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많아져 가는 한 “집단자살”까진 아니더라도 “집단자폭” 사회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사실, 사람을 문 개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저녁마다 걸어서 작은 음악회에 갈 수 있는 곳, 작고 아름다운 영화관이 있는 곳, 동네사람이 셰프이자 음식점 주인이어서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내 책도 받아줄 작은 도서관이 있는 곳, 개와 고양이를 좋아해 개와 고양이 판이지만 남에 대한 배려와 자치체의 관리가 충분해서 기분좋은 산책을 가능케 해 주는 곳, 산책 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미술관/갤러리들이 박혀 있는 곳, 그런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동네에 많아 언제고 같이 밥먹고 차마실 수 있는, 배려와 미소가 넘치는 그런 동네/도시에, 나는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