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계급/이동

1908년, 그러니까 109년전에 일본의 문호 나츠메소세키가 남긴 <광부>라는 작품이 있다. 자신의 체험을 써 달라는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소세키가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오로지 그 체험이 말하는 절망성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애문제로 고민하다 자살하고 싶어 했던, 유복한 집아들 열아홉살 청년이, 우연히 광부가 되었다가 (병을 발견했다는 핑계) 곧바로 그만두게 되지만, 소설 속에서 강조되는 건 글자그대로의 땅밑, 깊은 암흑의 세계다. 자살하고 싶은 생각도 사라질 정도의 죽음의 세계. 혹은 죽을 수 있는 사고 위험이 언제나 함께 하는 세계.
세상에 힘든 노동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광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끔찍한 노동중 하나가 아닐까. 소세키는 지극히 관념적으로(지식인의 시각으로 ) 그 세계를 쓰고 있어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10 년전 지식인에게 탄광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낯선 공간이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기는 하다.
소세키의 이 작품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조차 못되지만, 일본 작가들은 이후 그런 노동자/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많이 썼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 <게공선>으로 한국에서도 꽤 알려지게 된 고바야시 다키지는, 이 작품으로 판매금지, 불경죄 기소, 수감당한 끝에 당시 공산주의를 불법화했던 이른바 치안유지법 단속 대상으로서 특고경찰에게 벌거벗겨져 몽둥이로 맞은 끝에 사망했다. 1933년 일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근대란, 사회주의자를 사형시키고 노동자문제를 고발한 지식인을 때려 죽이기도 한 시대였다. 자국의 지식인조차 그런 정황에 놓여 있었을 때, 언어마저 미숙했을 “조선인 광부”에 대한 대접이 어땠을지는 체험담을 (보고도 알 수 있지만), 읽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시마에서 일한 사람들의 고통을 오로지 “강제연행당한 조선인”이었기 때문만으로 보는 건, 수십년전엔 다들 알고 있던, 참혹한 노동에 수반되는 계급성을 소거시키는 일이고, 결국 사태를 제대로 보지 않겠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오래전에 “이동”에 대해 공부하면서, 1960년대 독일로 간 광부들이 살아야 했던 것은 일본인 광부들이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인 광부들이 돌아오고 난 이후 그곳에 살게 된건 베트남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본은 국경을 넘어 싼,혹은 힘들고 위험한 일도 해 줄 노동력을 찾는다.
현재 우리가 동남아시아계 외국인노동자를 차별하는 건 그가 동남아시아 출신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힘든 노동이라도 절실한, 가난하고 언어소통조차 매끄럽지 못한, 그래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이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인가? 혹은 그 두가지가 합쳐진 건가?
성급하게 대답을 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늘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는 자세 쪽이다. 반복을 막는데 도움이 되는 건 그 쪽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