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단상

일본에 관해 쓴다 해 놓고 한동안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얘기만 올렸다. 이제 가끔 본론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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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각된 “전후일본”

아베정권의 집단자위권에 반대하는 일본인이 60퍼센트가 넘는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중 어디도, 놀랍다는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늘 생각해왔던 “군국주의국가”라면 국민들이 나서서 찬성해야 하는데, 그런 국민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편”이 되어 준 듯한 일본을 어여삐 여기는 보도들만 넘쳐날 뿐이다.

하지만 정말은 그런 일본이, 일반적인 일본인 다수의 모습이다. (집단적자위권 문제에 관해선 더 섬세하게 논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 다시 쓸 생각이다.)
심지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무라야마수상의 여러정책도, 그저 악의 화신인 것처럼 얘기되는 자민당의 국제정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아사노토요미). 그리고 내가, 십년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에서 중점적으로 쓴 건, 그런, 전후일본과 그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였다.

물론 전후일본의 한계나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한계를 말하려면 우선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충분히 알아야 한계를, 그리고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전에 쓴 적이 있지만 한일협정을 맺고 국교정상화를 했어도, 우리가 일본의 맨얼굴(문화/일반인)을 보기 시작한 건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썼던 얘기는, 일본전후는 기본적으로 이전과의 단절을 결심하며 시작된 시대였고, 그러다 보니 국민들에게 반전사상/평화주의가 정착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애국심이 없어진 국민들을 우려하거나 미국으로부터의 자립등을 생각하는 우파들의 목소리가 그에 반발해 커진 시기가 가끔 있었고, 그걸 일본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의(주로 일본좌파가 견인. 기본적으로는 정치적위기의식과 자성에서 비롯된) 목소리만 보도되면서 그것이 “전후일본”인 것처럼 간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전후일본”에 대해 아직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전후사상”의 핵심에 있었던 지식인으로 꼽히는 가토슈이치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물론 그렇게 된 건 나를 비롯한 일본학연구자들의 책임이다. 나역시도,가라타니고진등 현대지식인은 소개했지만( 일본에 이른바 “양심적지식인”이 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을 때 얘기다), 마루야마마사오, 가토슈이치, 요시모토다카아키등의 존재를 소개하는 일엔 태만했다(마루야마는 많이 번역되었지만).
문학조차도, 우리 앞에 놓인 건 소세키니 미시마등 근대작가에서 갑자기 현대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중심이고, 그 사이에 놓인 노마히로시나 오오카쇼헤이(그에 관해선 문학시리즈에 넣었지만)에 대해선 알려지지도 읽히지도 않는 것이 현황이다.

물론 타국의 문학과 사상을 꼭 체계적으로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대일본을 알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전후일본”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은 우리의 일본이해를 결정적으로 왜곡시켰다. 그러는 사이에 “전전일본=전후일본”이라는 지극히 단선적인 이해만 팽배하게 되었다.
일본과 다시 마주하려면,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아주 적거나 왜곡되었었다는 자각부터 필요하다.

지난 주말심포지엄은, 일본에서조차 포스트모던이후 비판에 급급해 그런 전후사상을 잊거나 폐기하려하는 현대일본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다시한번 “전후일본”의 근간을 만든 “전후사상”을 재검토해 보자는 취지의 심포였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고 11살때 패전을 맞은 81세 노학자와 “영속패전론”을 쓴 37세 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선배들의 “지의 양상”에 대해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조차 했다.

깊이 알아야, 폐기든 망각이든 계승이든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은, 잘 알지 못하는 채로 그저 폐기하려 하거나 옹호할 뿐이다.
하지만 후대가 할 일은 전부 버리거나 전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죽은자를 둘러싸고 그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냉철히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후대이기에 가능한, 특권이기도 하다.

주말심포에서 만난 역사학자 나리타 류이치 선생은
1919년에 태어나 7년전에 작고한,”9조의 모임”의 발기인이기도 했던 가토슈이치에 대해 쓴 책<
가토슈이치를 기억한다–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은 일본의 “패전후”에 어떤 물음을 던져왔는가>는 제목의 책을 건네 주었다.
이 모임을 주최한 70세 불문학자 미우라선생은, 가토의 생일인 9월19일에 가토에 관한 강연회를 연다고 했다. 금년 강연자는 우에노치즈코선생이라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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