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어제 올린 포로심문 조서 기사를 게재한 한국 언론은많지 않은 듯 하다. 그나마, 우리한테 중요할 수 있는 위안부관련 기술까지 공정하게 언급한 곳은 경제지 한 곳 밖에 없었다.

낯선 인식을 무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국제문제화된 문제다. 우리가 마이니치를 무시해도, 세계는 마이니치신문을 본다. 이런 식의 자폐성은 한일 국민간 공통인식공유를 더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세계 속의 고립을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편향성 속에서 자란 우리아이들이 훗날 겪을 일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물론 현재 역시 이미 20년전의 “훗날”이다. 내가 지원단체의 책임을 물어 온 이유는 거기에 있다.

“부모에 의해 팔려간” 사실을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고, 오늘날도 부모에 의해 팔려가는 소녀는 전세계에서 적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의 공통점은 빈곤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나는, 이들이 말하는 “부모”에는 “수양부모”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기본정보를 공유해야 토론도 반박도 가능할 것 아닌가. 우리가 모르는 척 하는 동안 일본의 혐한파들은 또다시 한국을 조롱중이다.

역사란, 조상의 “후예”로서의 긍지를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과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지혜는 계승하고 잘못은 직시하는 일. 당시와는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는 일. 그게 아니라면, 역사와 마주하는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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