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1심] 제2회 공판기

박유하

2016 / 9/ 20

두번째 형사공판이 열렸다.

지난 번에 마치지 못한 25개 항목을 둘러싼 공방. 그런데 사실 원고측이 문제삼는 ‘동지적관계’라는 단어는 지적된 곳 이외에도 여러번 나온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학자의 글을 인용한 부분마저 마치 내가 말한 것처럼 지적된 부분이 있다. 웃지 못할 아이러니. 고발자체도 그렇지만 이러한 부정확, 그에 따른 소모를, 나는 2016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현상으로 생각한다. 나눔의 집의 고발, 검찰기소, 그리고 학자들의 침묵과 가담이 보여준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월에 나온 민사재판판결문은 여러 항목에 관해 ‘의견표명’이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있었다. ‘의견표명’이란 ‘사실적시’가 아니라는 뜻이고, 형법상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해야만 해당된다. 그런 기준에 따라 민사판결은, 원고측이 지적한 항목 중 많은 부분에 대해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의견표명일 뿐’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사실이 나는 착잡했다.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저 도망치려는 변명으로만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학문은 사실 늘 가설일 뿐이다.

가설(고찰)이 옳은 지 여부(진실인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시간-세월이 필요하다. 물론 동시대/공간 안에서도 날카롭게 판단할 수 있는 이들은 늘 존재한다.

나의 책은 과거 20년 이상 한국사회에서 정착된 ‘상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따라서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현재 시점에서 생각한 ‘나의 진실’일 뿐이다. 공감해 주는 이들이 있을 경우 그 진실 공간이 넓어질 뿐.

검찰은 ‘가설’로서의 학술서에 대해  ‘사실’을 적시했다는 전제를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설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을 내가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근본적인 모순, 근본적인 뒤틀림. 학술서를 둘러싼 법정이란 그런 공간이었다.

판사가 제시한 다섯 개의 규칙에 기준해 봤을 때 나의 책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검사가 애써 내가 ‘사실’을 말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동시에, 정해진 규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무죄’라는 법정논리자체가,  내겐 또 하나의 근본적인 모순으로 느껴진다. 법은, 국가를 닮았다.

이하의 공방 역시 실제 이루어진 내용 뿐 아니라 미처 발화될 기회를 얻지  않은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추가로 서면제출될 내용이기도 하니 실제공방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속기록이 공개되겠으나 당일 메모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라 순서 등이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제1회 공판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제기된 검찰의 목소리는 대부분 이미 제기된, 학자를 비롯한 비판자들의 의견이었음을 밝혀 둔다.  그러니까 이 글은, 비판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응답에 앞선, 간략버전 글이기도 하다.

——

검사
박유하의 책은 위안부할머니를 매춘부로 취급했다. 그러니 ‘사실 적시’다. ‘사실’을 쓴 책이다

답변
나는 위안부를 ‘그냥 매춘부’라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 그들의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했다. 그건 말하자면 위안부의 ‘재의미화’ 작업이다. 그리고 그건 기존 지원단체가 주장한 ‘성노예’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똑같지 않다. 원래 ‘성노예’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운동과정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말하겠다.
검사는 가라유키나 일본인위안부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가라유키 역시 대부분 속거나 팔려서 ‘매춘부’가 되었다. 1970년대초에 거장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가라유키에 관한 다큐를 만들었는데, 여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https://youtu.be/NQgBqzuRU3k

조선과 일본인 위안부사이에 차이와 차별은 있었다. 오히려 그 차이를 보기 위해서, 나는 이들이 ‘여성’으로서 겪은 체험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임을 말하려 했다. 그 차이를 부정하고 단순화시키는 것은 사태를 정확히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욕망이 시키는 일이다.

한반도에 살다가 나간 일본인 여성들도 많았다. 그것만 참조해도, 물리적 강제연행주장의 문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일부 학자 주장대로 식민지에서만 사기모집이 쉽게 가능하도록 했던 법체계가 존재했다면, 조선에서 떠난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검사
박유하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매춘의 틀’ 에 있었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근본적으로’라는 말을 다수 사용했다. 박유하의 기술이 의견표명이 아니라 ‘사실’, ‘본질’을 말한 것이라는 증거다.

답변
내가 말한 ‘매춘의 틀’이란 본질이 아니라 형식을 지적한 말이다. ‘틀’ 혹은 ‘기본적으로’라는 단어 역시 본질이 아니라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검사
아편사용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는 ‘동지적관계’임을 지적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다.

답변
아편사용문제를 굳이 언급한 이유는 위안부문제를 다루는 애니메이션이 창작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왜곡했기 때문에 그러한 왜곡욕망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아편을 사용하면 ‘세상이 내 세상’이라고는 말 한 위안부의 증언을 인용했을 뿐이고, 그것은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임을 나는 강조했다. 그런데도 그러한 사실이나 느낌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것은, 성과는 관계없는 ‘순수한 소녀’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런 소녀의 틀을 넘어선 위안부일경우 내치도록 만들 폭력적인 발상이다.이는 글자그대로의 매춘부는 배제하고 위안부담론을 구성해온 20여년의 세월이 만드는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인식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위안부의 감정을 부정하는 일이야말로 위안부 차별이다. 검찰의 생각은, 자신들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 나의 ‘생각’을 처벌하고자 하는 원고측 생각만을 신뢰한 결과로 만들어진 생각이다.
무엇보다 여기서의 관계는 설사 동등하지 않다 해도 남녀관계일 뿐 조선과 일본이 동지라는 의미의 “동지적관계”와 무관하다.

검사
‘창녀’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사실적시이고 명예훼손이다. 심지어 소설(따위)를 사용한다. (그러니 허위의 책이다)

답변
위안부가 공창제의 연장선상의 제도였음은 야마시타영애, 송연옥 등 여성학자는 물론 그 이외에도 이미 여러 학자가 지적했다. 증거자료로도 제출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창녀’란 본문 안에 ‘조센삐’라고 말한 일본군인이 사용한 단어를 알기쉬운 말로 바꾸어 인용한 것이고 일본군에게 ‘조센삐’란 ‘창녀’로 인식되었다는 뜻이다. 그 부분을 들어 박유하자신이 그렇게 비난한 것처럼 말하는 일은 기초적 독해력 부족의 결과다.

검사
일본이 불법행위를 했음에도 박유하는 법적배상을 인정하지않는다. 자신의 해결방법을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답변
나는 이 문제를 우선 여성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인 위안부의 경우 식민지지배가 야기한 문제로 보았다. 그 때문에 1910년, 1965년, 그리고 1990년대를 고찰하고 이 문제에서 한일양국이 어떤 점을 봐야 접접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나의 생각을 말했다. 그건 나의 생각일 뿐이고 설사 문제가 있다 하더라고 명예훼손과는 무관하다.
또한 이른바 불법이라는 주장은 1990년대에 북한의 법학자가 말한 주장에 의존한 것이다. 그런 판단은 ‘국가가 강제로 끌고 갔다’, ‘학살 했다’는 이해에 근거한다. 그러한 전제자체가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 판명되었음에도 20년이 지나도록 위안부문제에서 기존 담론의 주축이 된 학자들이 여전히 이 주장에 의거하고 있다. 그것은 태만이자 커다란 기만이 아닐까.

검사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하는데, 문서가 없다고 해서 납치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는가? 북한으로 납치된 일본인의 경우 문서가 없으니 강제연행이 아닌가?

답변
(당연한 일이지만 검사는 위안부문제 관련 기존 담론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었다. 동시에 너무나도 피상적인 담론을 원용하고 있었다. 정확히 보면 다른 이야기를 가져오고, 박유하가 옳지 못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강조해 듣는 이들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도록 유도했다.)

나는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강제연행이 없다고 하지 않았다. 더구나 식민지화된 조선반도에서는 ‘공식적으로’ 없었다고 했을 뿐이다. ‘공식적으로’의 의미는 동원을 요청했다해도 그것이 곧 납치나 유괴나 속임수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일본군은 업자의 계약서를 확인했고, 너무 어린 소녀가 왔을 때 되돌려 보낸 이야기가 위안부의 증언에 존재하고, 속아서 끌려 왔을 때 다른 직장에 취직시키도록 조치한 일도 있다. 처음에는 국가의 물리적 강제동원인것처럼 주장한 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제는 모집의뢰가 곧 강제동원인 것처럼 주장한다. 위선이자 기만이다. 결국 위안부에 관한 진실(역사)보다 ‘법적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 자신들의 생각(현재)을 더 우위에 둔 주장일 뿐이다.

검사
동지적관계라는 말은 모욕이다.

답변
책의 소제목에 ‘군수품으로서의 동지’라고 붙인 곳이 있다. 이 제목이 나의 의도를 말해 줄 것이다. 나는 ‘동지적 관계’라고 하는 말에 아주 낮은 차원의 의미만 부여했다, 다시 말해 당시 국적이 일본인이었다는 것을 환기시키려 한 단어이다. 전쟁상대국가였던 ‘적’의 위치가 아니었고 오히려 전쟁을 도울 것을 요구받은 존재였다는 말을 하기 위한 표현이다. 굳이 그 작업을 한 것은 ‘동지'(식민지화, 일선동조론, 내선일체)라는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은밀한 차별과 국가의 국민동원에 따른 개인의 희생이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검사
위안부는 애국하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 협력자가 아니다.

답변
당사자의 체험은 하나하나 귀중한 역사지만, 그것이 꼭 자신이 당한 일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자가 하는 일은 수많은 사례를 보면서 말하자면 퍼즐을 맞춰가는 일이고, 그 퍼즐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을 때 보이는 것을 ‘구조’로서 설명한다. 따라서 위안부가 마음으로건 형식으로건 그것이 ‘애국’구조속의 일이었는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분석자의 의견일 뿐이다. 실제로 긍정적으로 내면화했다고 한 사람이 있다고 한 들 그것이 삶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연애도 마찬가지, 실제로 장교와의 관계는 위안부로 하여금 ‘지옥보다 나은’ 공간으로의 진입을 말해 주는 것이었고 실제로 부하들에게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을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나눔의 집 할머니중에도 ‘보국대’로 동원되었다고 말하거나 황국신민서사를 잘 외워 배급을 받았다고 말한 할머니가 있고 나는 그런 시대상과 정황을 ‘애국의 틀’로 표현했을 뿐이다. 또한 위안부를 ‘낭자군’으로 부르거나 위안소 이름을 ‘애국봉사관’이라고 붙여 당연시한 국가를 비판하기 위해 그런 단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것이 ‘강요된 애국’임을 말했다.

검사의 비난은 이러한 정황에 대한 무지 혹은 부정하고 싶은 의식이 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부정은 매춘에 대한 부정과 마찬가지로 위안부를 이중으로 배제하는 일이 된다. 나는 위안부할머니들이 당당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책을 썼다. 그런 구조 속에 있던 이들이 설사 단 한사람이라 할지라도.

검사
박유하는 소설을 사실처럼 사용한다.

답변
동시대 경험자의 소설에서의 역사적 기술은 때로 이른바 사료에서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문학연구자로서 이른바 사료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 텍스트를 사용했고, 실제로 작가의 실제체험과 가깝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들의 작품을 사용했다. 무엇보다,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을 향해, 당신들의 조상도 이렇게 위안부문제의 비참을 기술했다고 말하기 위해 사용했다. 위안부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서다.

그런데도 검찰은 그런문맥은 완전히 무시하고 단어만 가져와 박유하 자신이 그렇게 비난의 뜻을 섞어 말한 것처럼 말한다. 서울대 김윤식 교수도 소설은 ‘증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때로 소설은 입으로 말하지못하는 일(증언)을 말한다.
http://m.hani.co.kr/arti/culture/book/298376.html#cb

검사
소녀상을 모독했다

답변
소녀상에 대한 언급 부분은 위안부가 아니라 지원단체에 대한 비판부분이다. 그들의 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왜곡되었는지 말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명예훼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검사
박유하는 사죄보상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박유하가 ‘동지적 관계’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답변
(이부분은 검사가 공부가 부족했던 것 같다. 민사재판에서 원고측은 이렇게 말했었다. ‘박유하는 자신의 해결방법을 관철하기 위해 (법적책임 부정, 징병자와 같은 피해자로 인정하라는 요구), 동지적관계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지원단체는 정말은 명예훼손인지 여부에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박유하가 생각한 위안부문제 이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점, 그에 따라 해결방식이 다르다는 점, 그 방식에 대한 사회적관심에의 경계심을 억압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는 고발장과 이후의 의견서에 명확히 나타난다. 언젠가 가처분재판과 민사재판에서 어떤 공방이 오갔는지를 연구해 주는 이들이 나타난다면 밝혀질 것이다. 이 소송이 무엇을 위한 소송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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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공판을 포함하면 벌써 여덟번이나 형사법정에 섰다. 내겐 이 사태가,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사태”로 보인다. 우리는 아직 해방을 맞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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