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 지식인들의 위선에 관해

 

2월 23일 포스트

지식과 권력의 유착, 다시 말해 지식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권력의 지식에 대한 욕망을 말하는 것은 인류가 탄생된 이래 너무나 뻔한 사실로 간주된 것이어서 새삼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내 눈에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관심은 ‘포지션’인 것처럼 보인다. 적실한 포지션은 그에게 발언할 권리, 대우받을 자격, 영형력을 미치고 꾀할 자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담론의 선취에 따라 권력의 지형이 쉽게 바뀌는 우리 사회 구조 안에서는 특히 그렇다.) 너무 삐딱한 시선인지는 모르지만 지식의 권력적 행사에 용이한 포지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은 매우 본능적인 것이어서 이것은 심지어 학자적 양심에 우선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결국 자신의 생래적 계급과 상대적으로 모순을 덜 일으키는 진영 안에서 ‘자리’에 대한 헤게모니를 다투고 취하는 것에 자신의 지식을 소비하는 것이다. 모든 지식인이 다 그렇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런 의심의 정황이 지식인 사회의 모순에서 이미 충분히 노출되었다고 믿는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국내에 학맥이 전혀 없는 학자의 학술적 저작물을 고소고발하고, 학문적 작업을 방해하는 중심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정적으로 구축한 포지션에 이 학자의 작업이 균열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지 그들이 자신의 위선을 은폐하려고 다분히 감각적으로 짜놓은 민족적 자존심 대 매판적 친일의 프레임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해당 책의 학술적 가치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잘 알기에 논의를 차단하고 법원에 단죄부터 요구한 것이겠지. 나는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양심의 심판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일본정부의 돈을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을 퍼뜨리고, 강간을 당해봐야 한다느니 ‘국민쌍년’이라느니 하는 막말로 자행되는 인격살인을 용인하는 것도 범죄행위에 준하는 것이다.) 내가 이번 사태를 두고 관심과 절망이 교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일본제국주의의 범죄를 두둔하겠는가. 종전 70년이다. 우리는 이제 ‘친일/반일’이 아니라 ‘극일’을 말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일본도 변한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지식과 권력의 위선이 정말 지겹다.

 

2월 28일 포스트

  1. 2월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는 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대청소를 했다. 대청소라고 해봐야 청소기 돌리고 걸레로 훔친 것뿐이지만. 어쨌거나 청소를 마치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지금은 열어놓은 창을 통해 산새소리가 제법 선명하게 들린다. 가벼운 산책, 청소를 마치고 새소리를 듣는 것, 온수와 냉수로 번갈아 샤워를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사람을 너그럽게 하는 것 같다. 우주적인 ‘망원감’을 가질 수 있다면 맹렬해보이는 우리의 삶 역시 꼼지락거리며 싸우는 진드기들의 싸움밖에는 안 될 터인데. 이딴 소릴 해놓고 나는 또 어딘가에 제출해야 할 서류 생각에 골몰하겠지.
  2.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복지를,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통일이라는 담론을 선점했을 때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야권과 진보세력의 반응이 생각난다. 전통적으로 진보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의제인 ‘복지’와 ‘통일’을 뜬금없이 ‘독재자의 딸’이 들고 나오니 뒤통수를 맞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의 심정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대놓고 비판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었을 그 자중지란의 포지션이 말이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거나 짐짓 무관심한 척하는 학계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복잡한 표정을 발견한다. 한일간 역사 문제를 주조음으로 하는 근대의 극복과 민족주의의 성찰이라는 가장 뜨겁고 민감한 의제를, 자기들 딴에는 ‘쳐주기도 싫은’ 비주류 학자가 자기들 눈에는 ‘되지도 않는 깜량’으로 계속 말하고 있으니, 일단은 기를 죽이고 싶은 심정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그 의제는 오로지 자기들이 기득권을 가져야만 하는 사유화私有化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팩트가 아니라 내가 가진 심리적 추정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내 심증이 보기 좋게 틀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학계가, 지식이 작동하는 매커니즘이 위선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한번쯤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3. 또 현실적인 정치 이야기를 하고 보니, 청소 후의 상쾌한 기분이 조금 망가졌다. 나를 잘 아는 분들은 진지하게 정치현안에 대한 발언을 가급적 삼가라고 조언하시는데,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내가 사는 동시대와 세계, 그리고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성실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나 혼자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면 문학적 피안으로 벌써 도피했을 텐데. 술이나 먹고 누워서 흐린 하늘이나 보며 살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