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 친일과 반일

3월 1일 포스트

친일과 반일

한국은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켰고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지배에 협력했다. 그들을 가리켜 친일파 또는 민족반역자 또는 매판세력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계속된 불행은 일본으로부터 자주적으로 해방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친일파 또는 민족반역자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지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친일파를 제거하기는커녕 거꾸로 친일파들이 민족주의자들을 처단한 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흑역사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한편으로는 친일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증오와 함께 반일에의 정념에 불타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더욱 비극적인 것은 바로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뒤집어진 혀로 반일을 부르짖으며 대중을 오도해왔다는 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그랬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친일에 대한 증오와 함께 맹목적인 반일이라는 덫에 빠지게 된 것이다. 반일은 친일의 단순 안티테제(반명제)일 뿐 결코 식민주의를 극복할 진테제(합)가 되지 못한다. 친일과 반일은 개화와 척사, 찬탁과 반탁, 종북과 반공, 친미와 반미라는 잔인한 이분법으로 우리 민족의 삶을 옥죄어 온 쇠우리의 하나이다. 한 마디로 무간지옥이다.

친일파의 지배에 대한 증오에 비례하여 반일에 대한 어떠한 이의제기나 수정도 허용되지 않는다. 최근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정식화된 반일에 대한 어떤 수정주의나 재해석도 친일로 매도되고 공격당하는 것을 보면서 친일 못지않게 반일도 또 하나의 야만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얼마 전 페이스북에, 식민지배 당한 것에는 우리 자신의 책임도 크다라는 글을 올렸고 직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했다. 내가 정식화된 반일 도그마에 수정을 가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친일파로 몰고 가려고 했다. 나의 주장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입하면서 친일파임을 자백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이 되는가. 그것은 제로섬 게임인가. 윈윈이 될 수는 없는가.

그렇다. 나는 친일파도 아니지만 반일파도 아니다. 나는 친일과 반일이라는 무간지옥을 벗어나고 싶다. 개와 고양이라는 동물밖에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토끼가 설 자리는 없다. 나는 우리에게 친일의 폐해 못지않게 일본을 무조건 악마시하면서 민족주의의 숭고함을 확보하려는 그릇된 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크게 우려하는 바이다. 나는 친일도 아니고 반일도 아니다. 나는 친미도 아니고 반미도 아니다. 나는 이 이분법이 지배하는 무간지옥을 벗어나고 싶은 하나의 중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