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다미, 법적 책임론에 대하여

 

건다미

5월 6일 ·

박유하 교수가 2013년 기사를 링크해서 나도 봤는데..
그래도 이때만 해도 좀 제대로 읽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있었음.
그리고 기사 내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법적 책임’과 고노담화에 관한 한국인들의 왜곡된 이해에 대해서 좀더 부연 설명해 볼까 해.
저번에 박노자는 물론 손아람 조차도 ‘법적 책임’에 대한 왜곡을 일삼는 경향이 있음.
일단 법적책임을 지운다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는 가해자들을 추적해서 전범 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거야. 유태인들은 최근까지도 가해자들을 세계 곳곳에 추적해서 고발하지? 뉘른베르그 전범재판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제대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처벌받지 않은 부분에 끝까지 물고 늘어지잖아. 아이히만 재판같은 무리수까지 동원하고 말이야. 개인이 아니라 아예 조직적으로 협력해서 증거를 모으고 가해자들을 추적해.
근데 이거 우리나라는 못했지? 일단 첫째 이유가 해방이후 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반민특위가 무산된게 큰데..하지만 위안부의 경우엔 반민특위가 아니라 아예 피해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았잖아? 그거 누구 책임이야? 한국인들 책임이잖아.
아사히의 특종보도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묻혀 있었을껄?
그러니 가해자를 추적해서 처벌하는거 현실적으로 불가능함. 당사자의 증언만 남아 있을 뿐 추가적인 재조사도 할 수가 없어. 고문당한 박복순 할머니의 사례처럼 기혹행위한 자들 추적해서 법적 처벌할 수가 없음.
그러면 결국 포괄적인 책임을 일본이 지고 사과하는 거야. 그런데 기혹행위에 대한 증언을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했나? 부인한적 없거든? 고노담화 내기전에 일본 정부차원의 조사, 피해자 증언 청취등의 과정이 있었고 거기서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납치나 가혹행위 사례에 대해서도 인정했음. 다만 증언의 세부적 사항까지는 이제 와서 재조사하여 검증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인정한 거지.
고노담화에 부정된 건 일본군의 조직적 공적인 깅제연행설이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부정한게 아니라고. 부정했으면 고노담화가 나올수 없지.
게다가 고노담화의 내용은 기존의 한국인들의 인식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어. ‘출신에 관계없이’ 나이가 어리든 많든 자발적이든 납치당했든 속았든..일본군의 관여하에 일어난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해친 사건으로서 사죄한다는 내용이야.
물론 나같은 사람의 입장에서야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국가주의로 정당화한 구조’에 대한 책임의 내용이 담겨야 더욱 확실한 사죄가 된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고노담화를 발표할 시기에 일본이 최대한 사죄를 하려했다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라고.
일본정부의 공식적 입장-고노담화 는 결코 일본 우익의 입장이 아님. 당시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던 양심적인 일본 국민들의 성취라고 보는게 올바른 태도임.
오히려 일본 우익들은 아베같은 정치인 앞장세워 계속 고노담화를 수정하고 부정하려 했음.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고노담화를 지나치게 가치절하 하며 ‘일본은 사죄한 적이 없다’고 하는 건 사실에도 어긋난 정치선동일 뿐이여.
그리고 지원단체가 보상의 법적책임 인정이 ‘사죄의 증거’라는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이기도 해. 그 논리에 따라 일본이 아무리 사죄를 해도 보상의 법적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죄를 안한 게 되는 거지.

둘째, 법적책임의 두번째 항은 보상과 관련된 것이야. 이것도 왜곡이 심한데, 일본정부가 보상과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법적책임이 없다’고 한 적이 없음.
정확하게는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법적책임을 다했고 새롭게 <또다시 반복할 법적책임은 없다> 는게 공식적 입장이지. 법적으로 이중배상의 책임을 부정한거.
한일기본조약이 조약으로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면 보상의 법적책임은 일본정부가 아니라 한국정부가 져야 하는 거임.
한일기본조약 청구권 조항과 관련된 당시의 회의록을 보면 일본은 오히려 조항을 넣지말고 국교정상화 이후에 시간을 갖고 진상조사를 한 다음 직접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겠다고 제안을 하는데 한국정부쪽이 한사코 거부하고 모든 개인청구권을 자신들이 대행해서 완결짓고 ‘최종적 해결’이라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우기지. 우긴 이유도 골때려. 당시 보상금액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 결국 이렇게 보상금받아 피해자들에게 안주고 지들이 낼름 처먹은 거잖아. 이거 100% 한국정부의 책임임.
한일협정의 청구권 조항으로 꼬이지만 않았다면 당근 일본정부가 공식사죄담화까지 발표한 마당에 사법부의 개인배상 재판은 아무 무리없이 피해자들의 승소로 이어졌겠지. 한일협정때도 진상조사와 개인보상에 적극적 입장을 취했던 일본이 거부할 이유가 없어.
그런데 위안부 문제가 이슈가 된 90년대 이후로 한국정부는 이 ‘법적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음. 마치 자기들은 제3자인 것처럼 방관자처럼 또는 마지못해 행동해. 이 부분에 대해 몇년전 헌법재판소에 위헌판결을 받잖아. 그 판결내용이 바로 ‘방관자처럼 행세하지 말고 문제해결에 적극 노력하라’는 것이여.
이 부분과 관련해서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도 왜 정대협이 일본대사관앞에서 수요집회만 할 뿐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쟁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었음. 하지만 이런거 다 묻혀버렸지.
이 법적문제는 그리 만만한게 아니여.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이든 독일이든 다 똑같아. 조약을 맘대로 재해석하고 뒤집지 못함.
지난 그리스 디폴트 위기때를 생각해봐. 치프라스가 독일에 대해 나치피해보상이 과거에 불충분하게 이루어졌다며 추가배상 하라고 요구했지만 독일은 끝까지 거부하잖아? 독일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어서 그런줄 아냐? 이전에 맺은 조약을 근거로 거부했던 거지. 그런걸 함부로 뒤집지 말라고 경고한거야. 그러면 법적 안정성도 해치고 밑도 끝도 없이 정부는 소송에 계속 시달려야 하거든.
그래서 독일정부도 그런건 안함. 대신에 기금이나 재단 같은걸 내세워 추가보상과 추가적인 진상조사를 전담케 하는 기구를 따로 만들어서 해결함.
이게 바로 ‘법적 문제’야.
한국인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이 국제적으로도 고립되어 생때쓴다고 인식하는데 그것도 착각임. 대일 강경파인 멕두걸 유엔인권위원도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 위해선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면 된다고 하지만 승소하리란 보장은 없다고 얘기하거덩?
한국쪽이 추가적 법적배상 책임을 일본에게 묻기 위해 갖가지 법논리를 개발하지만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기가 그리 쉬운게 아니라고… 한국정부의 원죄적 책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피해자들은 일본으로 부터도 한국정부로 부터도 보상을 받지 못한 처지가 되어 버렸지. 한국정부도 ‘법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사실 보상과 관련한 법적책임은 한국정부에게 더 있음에도 그걸 요구하는 운동단체나 국민들도 없지?
때문에 이 문제는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거임.
더이상 법적책임 운운하는거 부질없는 거여.
(내 생각엔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반반씩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함께 기금이나 재단을 만들어서 해결하는게 가장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박유하 교수를 비롯해 누가 ‘법적책임이 없다’고 했냐? 한일기본조약으로 법적문제가 꼬여 있어서 계속 법적책임을 일본정부에게만 묻기가 ‘어렵다’고 한거지. ‘(애초에) 없다’와 ‘(현실적으로) 어렵다’ 말뜻 구분 못하냐?
그럼 니들은 쉬운 문제라고 생각하니? 쉬우면 지금이라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
실제적으로 법적문제 해결에 보탬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 역적 취급하냐?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지금 박유하 스토커 자임하는 이들과 아닌 이들의 차이는 박노자 처럼 ‘일본은 깡패집단’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집단’ 등등 과격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느낌표 !! 팍팍 넣는거 밖엔 없음. 그러면 법적문제가 해결돼?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증말.

결론적으로 우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해야 할 것을 정리해 보자.

  1. 전시 가혹행위와 위안부제도의 폭력성에 관한 범주의 혼동이나 강제연행설 같은 팩트에 어긋난 주장으로 우익의 입지만 강화시키는 기존의 주장들을 재평가하고 위안부 제도를 운용한 것에 대한 일본군의 책임과 사죄의 본질적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한국-일본 국민들간의 역사인식의 합의를 만드는 것.
  2. 더이상 보상의 ‘법적 책임’ 문제에 연연하지 말고 ‘인도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해결방안을 만드는 데에 정부-민간이 함께 참여해야 함.
  3. ‘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가’ 라는 <제국의 위안부>가 던진 문제의식을 보충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당시의 가난한 여성들이 처해진 사회적 지위, 젠더와 계급에 관한 보다 풍부한 사료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 져야 함.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