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홍진,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배홍진

December 11, 2015 ·

제국의 위안부 –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나는 늘 궁금했었다. 취업사기 등으로 인신매매를 당해 위안부가 된 피해자들은 대중의 자연스런 동의하에 성노예라 불리기도 하는데, 똑같이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을 하게 된 여성들은 어째서 대중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지금까지 버젓이 매춘부라 인식, 호명되고 있는 것일까. 위안부와 그들(인신매매와 구조적 강제에 의해 매춘부가 된 여성)은 성적착취의 장소로 가게 된 과정과 자유의 박탈, 육체적 학대 등 그 피해 양상이 비슷한데 왜 매춘부는 성노예라 불리지 않는걸까?

여성들이 밤거리를 걷다가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부가 되는 일이 횡행했던 저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매춘부를 더러운 년이라 손가락질 하곤 했다. 그건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많은 남자에 의해 이미 범해졌다는, 그런 여성의 몸은 불결한 것이라는 비겁하고 폭력적인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린 새로운 편견과 차별을 만드는 경계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족과 국가의 역사로 호명된 피해자 여성의 몸과 호명되지 못한 피해자 여성의 몸을 구분짓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경계. 만약 매춘부가 피해자임에도 여전히 매춘부라면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매춘이란 말은 어째서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희석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금기어가 되었는가? 역설적으로, 동시에 매춘이란 단어는 어떻게 성노예의 순결한 정체성을 불결함으로부터 지키는 심리적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가지 이상한 코미디. 기지촌 피해자 여성들 중 노인의 연령에 이른 사람들을 이 사회가 공식적으로 기지촌 피해자 할머니들이라 부르는 걸 난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를 할머니라 부르는 건, 그들의 역사적 비극을 가족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가족인데, 어째서 기지촌 피해자들은 가족이 되지 못했는가.

오래전 불결(가부장의 시선 아래서)했던 피해자는 어떻게 순결한 피해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인격의 회복)이 역사의 정의라면 어째서 순결한 피해자들은 불결한 피해자들을 타자화하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이 정의로움은 우리 안의 어떤 괴물인가?

* 이 대단찮은 글을 쓰는데도 스스로 검열하고 사족을 단 말들이 너무나 많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때로 약자에 대한 담론을 검열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