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자발적 매춘” 에 대한 단상

김미영

https://www.facebook.com/miyong.kimto?fref=nf

 

2월 10일 포스트

(하얀 거짓말 혹은 과장 …. 에 대한 비교문화적 단상)
한국으로 말하면 손석희씨 정도의 영향력 있는 미국 NBC방송 앵커가 수년 전 보도에서 과장한 일로 평생 닦아놓은 커리어가 무너질 위기-그의 과장으로 딱히 피해자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간 그의 젊잖고 친화력 있는 분위기로 막강한 팬덤이 있는 인물이지만 사건보도를 둘러싼 과장이 드러났을때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니까” 로 인정하고 자숙하라는 비난은 있을지언정 그가 말한 하얀 거짓말들의 디테일의 오류를 발견, 지적한 이들에게 돌팔매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우석 사태나 박유하샘 사건을 보면 불편한 진실은 폭력을 써서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 언제까지나 진실의 메신저 들에게 돌팔매질하며 되지못한 괴논리를 펼치려는지. 공공의 선 이라니 .. 부끄럽지도 않은가.

 

2월 23일 포스트

자발적 매춘에 관한 단상:

내친구 “딥 뉴웬”

살다보면 동기간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도 인종도 살아온 과정도 아주 달라도. 대학원때 우리 동기 다섯명이 그랬다. 보스톤 토박이 키다리 아이리쉬 맨 “바비”, 쥬위시 공주 “데나” , 레바논 출신의 천재 “쑤라야” , 베트남을 틴 에이저일때 마지막날 보트로 탈출했던 “딥”, 그리고 남편 공부시키러 왔다 우연찮게 공부하게 된 나. 공부도 한방에서 하고 밥도 같이 해먹고 싸우기도 무단히 싸우고. 이제는 다 뿔뿔이 흩어졌지만 형제자매 만큼 끈끈한 마음은 변함없다.

몇년전 모교에서 나한테 학교를 빛낸 동창에게 주는 상을 준다 하여 망설이다 갔었는데 그 상보다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캐나다 까지 각지에 흩어져 사는 내 친구들이 다 함께 모인 것. 산장 비슷한 교외의 리조트 스위트를 빌려 다섯이 일주일을 정말 논스톱을 먹고 놀다 왔다.
마지막 날밤은 모두 다 달빛 비치는 거실에 담요를 깔고 남녀 불문 중년의 “혼숙” 을 하게 되었는데 그밤을 잊지 못하게 한것은 내친구 “딥”의 난민 수용소 시절의 아리고 아린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그녀가 어린시절 베트남을 탈출하다가 식구의 반을 잃은 것, 고생고생하며 학부 마치고 미공군에 입대해서 당시 대령이었던 그녀는 군장학금으로 석박사를 마친 재원. 깔끔한 성격이라 내 너저분한 책상 치워주는걸 부전공으로 삼은 그녀(이제야 이야기지만 난 그거 속으로 싫어했다). 우린 그아이에 모르는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 내가 미국 오기 전 라오스 난민수용촌에서 삼년이나 살았던 걸 모르지?”

“………..”
그렇게 시작된 그이야기. 같이 울고 웃으며 들은 그 아이의 그 아픈 삼년 생활 중 요즘 부쩍 더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 반추한다. “난민수용소 생활이라는게 참 루머가 많은 곳이라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는 모두 다시 공산화된 베트남에 압송될 거라는, 그러면 우린 앞날을 기약할수 없는 수용소로 가거나 친미분자로 가려져 처단 될거라는 등의 이야기들…”
“그런데 그 와중에 채 여자티도 안 나는 나 같은 아이들이 어쨌거나 살아보려고 경비병들에게 추파를 던지는거야…”
“나? 물론 나도 몇날 며칠 어떤 경비병 에게 내 장래를 의탁해야 하나 그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고민하며 보냈지…”
“……..”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울기시작했다. 서럽게 서럽게 오래도록. 우리도 나직하게 숨죽이며 울었다. 달빛이 막 감당할수없이 쏟아 지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어린 친구들이 어떤 경로로 “자발적”인 매춘을 계획했던 실행으로 옮겼던 아니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이 가져다 준 그 폭력적인 상황이, 그래서 멍이 들었을 그녀들의 영혼들이 가여워서.

그날 밤 같이 울던 우리 친구들의 측은지심은 내 친구 딥과 그 아이 친구들을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를 전제로 한 조건부의 마음 울림이 아니었다. 내 일천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개중 식구들을 살리려고 쫌 발랑 까진 아이들이 껌씹으며 걸어갔던, 혹은 능력없고 심약한 어떤 아버지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그 아이들을 떠밀었다 해도, 우리의 마음 울림과 전쟁상황에 대한 분노나 그속에서 무시되는 인권옹호를 위한 작은 액션을 취하자는 우리의 결의는 변함없었다. (여담이지만 이 친구들중 셋이 인권옹호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최근 다시 불붙기 시작한 Park Yuha 선생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을 보며 내가 조용히 좋아해왔던 폐친들도 박유하샘의 관점을 오해하신듯 하여 안타깝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어떤 경로로 위안부가 되었던 우리 모두가 안아드려야 한다는 것. 그녀들이 딱히 소녀상에 맞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해서 우리가 모두 등돌릴 만큼 미성숙한 사회가 아니라면 꼭 묻어만 둘 게 아니라 이런저런 다양한 형태의 모집과정, 그 과정 속에 강하게 자리잡은 못난 가부장적인 문화의 역할도 살펴보면서 이제 몇 년 안 남은 이들의 여생을 제대로 보상하고 전쟁종주국이었던 일본에게도 팩트에 의거한 책임을 물어보자, 법정에서도 보면 큰 줄기가 있다 해도 디테일에서 틀리면 결국 힘있는 변론하기가 어렵지 않은가로 읽힌다.

요즘 미국에서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을 하는 친구들이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많은 탈북자들이 그들의 탈북과정이나 북한의 상황을 과장하여 발표하는데 그러다가 그 디테일의 틀리면 그들이 해온 모든 말의 신뢰성이 한방에 무너지고 만다. 그분들의 말로는, 우리 대중들의 너무 선명한 이원론적 내레이티브 선호가 그런 “하얀” 거짓말을 부른다 한다.

글로벌시대에 맞추어 스탠다드를 맞추자는 각성은 수출해야 할 컴퓨터 프로그램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박유하는 그 수많은 돌팔매를 맞으며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은것 같다.

“꼭 총칼의 위협으로 끌려간 소녀들의 이미지가 이책으로 훼손 된다해도 우리가 그이들을 사랑하고 안쓰러워 하는 맘이 달라져야 하는 걸까요?”

안개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모두에게 따뜻한 생각 보냅니다 . 내친구 딥에게 전화나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