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가처분신청 기각을 요청하는 탄원 성명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0년대였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사회적 관심사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까지도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에서 신문기사, 소설, 영화 등의 형태로 산발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졌을 뿐입니다. 이런 가운데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50년간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아왔던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으며, 이를 후원하는 단체들도 생겨났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단체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과 ‘나눔의 집’입니다. 정대협은1992년 1월부터 이른바 ‘수요시위’를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1000회 이상 주최하면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을 겪은 할머니들이 함께 생활하는 터전이자 전시 여성폭력에 대한 역사교육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지금과 같이 세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은 정대협을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지원 단체들의 헌신적인 활동의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운동’으로 발전해나가는 가운데,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그 존재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가 점차 ‘학문’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박유하 교수가 출판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운동’이 아니라 ‘학문’의 관점에서 논의를 심화시킨 국내의 몇 안 되는 연구 성과물 중 하나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성・민족・식민・계급 문제가 응축된 20세기의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는 ‘운동’의 대상만이 아니라 20세기에 잉태되고 지금도 계속되는 여러 사상적 과제들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학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운동’이 아니라 ‘학문’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더구나 아베 정권이 고노 담화를 재검토하고 집단자위권 해석을 변경하는 이 시점에서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싸고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법정 소송’이라는 윤리적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포함한 외교적 이해득실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보입니다. 따라서 누구누구 이하 몇 명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고, 이후 ‘학문‘의 영역에서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2014.07.07.

김철 외 224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