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8 연구모임 – 센다 유키(千田有紀, 무사시대 교수)

센다 유키(千田有紀)

 

아라라기 :그럼, 이제 지정토론자 두 분만 남으셨는데, 젠더 연구의 주역을 맡고 계신 센다 유키 씨 부탁드리겠습니다.

 

센다 유키:센다 유키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코멘트에 관한 제안이 왔을 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망설였습니다만, 저는 예전에 외국어대학교에 근무를 했었는데 B쪽에 앉아 계신 분들과 함께 연구를 한 적도 있고, 또 그런 가운데 박유하 씨와도 함께 프로젝트를 했었던 경험도 있어서 말씀을 좀 드려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이 이 종군 ‘위안부’ 문제에 접하게 된 것은 1991년 할머니께서 커밍아웃하시기 전에 대학시절인가 고등학교 시절에 우연히 저와 성이 같습니다만, 센다 가코(千田夏光) 씨의『종군위안부』문고판을 읽고 종군 ‘위안부’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유하 씨도 센다 씨의 책을 인용하고 계신데, 저는 오히려 센다 씨의 책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강렬한 위화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역시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가 기술되어 있는 부분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창부였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공창제도 하에 있었던 일본인 ‘위안부’는 나이가 좀 든 여자이며 성병을 가지고 있었고 창부였다는 식으로 상당히 모욕적인 기술을 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조선인 소녀들은 젊은 처녀의 소녀들이 연행되어 왔기 때문에 가엾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방금 전에 김부자 씨도 말씀을 하셨지만, 사실로서 젊은 여자아이들이, 소녀들이 징용되었다는 사실이 존재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때 역시 그 피해를 강조할 때, 그럼 일본인 ‘위안부’는 성병이 있고 창부였으니까 괜찮다, 나이가 든 여자들이었다 라는 식으로 멸시하는 형태로 종군‘위안부’를 이야기해도 좋은가 라는 의문이 계속 제 안에 남아 있고, 확실히 해소가 되지 않는 제 안의 의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니시노(西野) 씨나 오늘도 팸플릿이 있습니다만, 방금 전에 발표하신 오노자와(小野沢) 씨나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연구가 진척이 되고 있다는 점은 제 자신에게 있어서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역시 세계대전 전의 공창제도 하에서 창부가 되었던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는가, 특히 쇼와공황 후에 생계가 어려워진 동북지방에서 팔려온다거나, 팔려온 소녀같은 사람들이 공창제도 하에서 창부가 되었는데, 이러한 일본인 ‘위안부’에 관해서도 저는 깊은 문제점과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종군위안부’ 문제가 문제화된 이후에 추궁하려 하면 오히려 말을 못 하게 되었다고 할까, 일본인인 당신이 왜 일본인 ‘위안부’에 대해 말하는가,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식민지주의의 문제라는 식으로, 제 자신의 문제의식이 소거되어지는 점과, 같은 ‘위안부’여도 일본인 ‘위안부’는 문제가 아니다 라는 식의 언설이 있다는 데 대해 계속 위화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 자체는 해소된 것 같으므로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서, 제 자신은 아까도 나왔습니다만, 모델적 피해자 같은 것을 만들지 말고, 나이가 어리다든가 처녀라든가가 아니라, 역시 어떠한 형태이든 ‘위안부’라는 제도가 비참했다 라는 형태로 이야기가 문제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박유하 씨의 이 책이 문제가 없다라든가, 하자가 없다라든가, 역사 자료들을 꼼꼼히 다뤘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문장도 좀 더 뭐랄까 기술방식이 상당히 거칠다는 여러분들의 생각은 물론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바탕 하에 평가를 한다면, 역시 폭력의 문제의 복잡성이라는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인 업자들이 상당히 직접적으로 조선인 ‘위안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하는데, 폭력을 휘두르는 형태로의 지배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원시적(primitive)이며 지배로서는 파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말을 듣게 하지 못 한다는 것은 페미니즘의 문맥에서도 포스트 구조주의 이후에 지배로서는 파탄되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보다 더 교묘한 폭력이라는 것은 예를 들면 증언집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눈치를 보는 식으로 이런 행동을 하면 마음에 들어해 줄 지도 모른다는 형태로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 이러한 것이 보다 더 교묘한 지배이며, 또한 한 단계 위의 지배라는 것은 자발성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 라는 형태로 주체화되어 갑니다. 이것이 가장 비참한 지배의 완성형으로 그러한 의미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황민화 정책 하에 일본인으로서 자신이 국가에 봉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박유하 씨는 모두가 그러한 동지적 관계라든가, 애국적이라는 기술을 하고 있는 인상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러한 것들이 없었다 라고는 단언할 수 없으며, 또한 그러한 것 자체가 실로 비참하며, 그러한 분위기에서, 그러한 것 자체가 비참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하나로 결속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최근 10년,20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만, 제 자신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많이 망설여집니다만, 마찬가지로 민족도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하나로 결속된 존재는 아니며, 박유하 씨가 업자의 문제를 다룬 것 자체도 중요한 문제 제기이고, 그러한 것 자체가 국가의 책임을 면책하는 것은 물론 아니며, 오히려 같은 민족 하에서 그러한 폭력적인 관계, 이해관계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식민지주의의 비참함을 두드러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저는 이러한 논의는 논의 자체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을 하며, 여러분들도 거듭 말씀을 하셨지만, 형사라든가 민사라는 그런 장소가 아니라, 이렇게 열린 장소에서 제대로 논의를 해 가는 것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겠습니다.